(#25-22에 이어) "일부러 숨겼나 보구나. 난 유고집을 정리한 사람들이 써 놓은 글을 읽고 범인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 줄 알았어. 그랬다면 내가 괜한 소리를 했나 봐. 불쑥 말하는 버릇이 있어서. 난 정말 주책이지. 미안하다."
“내게 미안할 게 있나? 지은이에게 미안하지. 현주가 치명적이긴 했어도 상처를 입힌 게 현주만은 아니잖아. 그래도 현주가 시인이 되었다는 말은 차마 못하겠더라고. 지은이가 들으면 다시 상처 입을까 봐 걱정도 되고, 네가 잘못한 것은 없어. 어차피 언젠가는 알게 되었을 걸. 차라리 잘 되었지, 뭐."
애영이의 속삭이는 목소리에 윤이 나직한 소리로 대꾸했다.
“나도 그때는 참 잘못했어. 감쪽같은 현주의 계략에 속아서 지은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했거든. 정말 지은이가 훔친 줄 알았어."
"너만 그랬던 건 아니야. 다들 그렇게 생각했었지. 그러니 지은이가 속많이 상했겠지. 속을 뒤집어 보일 수도 없고, 얼마나 답답하고 속이 탔겠니?"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그치? 현주가 범인이 저라고 말하지 않고 죽었으면 우리도 끝까지 지은이가 범인인 줄 알았을 테니까. 정말 소름이 끼친다. 이번에 그때 일들을 지은이도 다 잊었으면 좋겠는데. 지은이가 결혼도 안 하고 독신으로 사는 것이 꼭 내 탓 같아서, 자꾸 마음에 걸려."
애영이의 후회하는 말이 그녀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애영이에 대한 감정도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답답하기도 했을 거야. 그렇다고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자. 혼자 사는 것엔 무슨 이유가 있겠지. 어차피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거니까 우리가 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어. 꼭 누구 탓이랄 수도 없고.”
"지은이가 현주를 용서할 수는 있을까?"
"그거야 지은이 마음이니까 우리야 모르지. 우리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겠어? 현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지은이가 더 잘 알고 있었을지도 몰라. 너랑 현주, 지은이, 세 사람 꽤 친했었던 사이였고.”
"그러긴 했지, 사고가 없었다면 지금도 좋은 사이로 지냈을지도 모르고, 현주는 왜 자살했을까? 죽음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닌데, 정말 바보짓을 했지? 지은이처럼 이렇게 자리를 만들 수도 있었는데.”
한참 뜸을 들인 후에 애영이 깊은 한숨을 쉬며 혼잣말처럼 내뱉었다.
"그러게. 현주는 자살이 어쩌면 최상의 선택이었을지도 모르지. 죽은사람 이야기는 우울하니까 더 이상 하지 말자"(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