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3에 이어)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난 도둑이 아니라고.
소리들을 털어 버리기 위해 고개를 흔들던 기억이 새삼 되살아났다. 그녀는 다시 억장이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 입을 앙 다물고 걸음을 재촉했다.
언덕 밑의 건물, 기숙사가 보였다. 고통스런 기억에도 불구하고 기숙사는 마법의 주술로 그녀를 끌어당겼다. 왼쪽 길로 방향을 꺾자 버려진 헌옷처럼 허술하고 초라한 건물이 눈앞에 나타났다. 뜰에 놓인 대리석 의자들은 군데군데 패어 있어 보기에 민망했고, 건물을 촘촘히 둘러쳤던 가시철망은 손만 대면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보였다. 뾰족한 철망은 콘크리트 담장처럼 그녀를 견고하게 지켜 주었지만 이제는 세월에 부대낀 티가 역력했다. 붉게 녹슬어 위태롭게 서 있는 모습이 힘없는 늙은 퇴역 군인의 행색이어서 그녀를 슬프게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가 살펴보고 싶었지만 애써 발걸음을 돌렸다. 너무 오래 지체한 것 같았다.
멀리 입구에 세워진 총동창회를 알리는 현수막이 보였다. 바람으로 펄럭이는 현수막 밑에 누군가 서 있었다. 여자는 그녀만큼 늙어 보였다.가까이 다가가자 길에 시선을 주고 있던 여자가 달리듯 걸어왔다. 환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 피워 올린 윤이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안 오는 줄 알고 얼마나 마음을 졸였는데. 기다리느라고 초조해서 혼났다. 어쨌거나 이렇게 와 주었으니 고맙다. 정말 반가워."
윤이 손을 잡고 흔들며 눈에 물기가 번졌다. 윤의 손에서 전해 온 따뜻한 온기에 오래전의 기억 이랑에 드문드문 숨어 있던 고마움이 뛰쳐나왔다.
-애들이 날 범인이라고 생각하나 봐. 차라리 그렇다고 말해 버릴까 봐. 유일하게 상의할 수 있는 상대여서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때, 윤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 정말 네가 돈을 가져간 거니?
윤은 그녀를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다그쳤다. 너무 견디기가 힘들어 그렇다고 말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지만 그녀는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럼 됐어. 거짓말로 난관을 피해선 안 돼. 허위로 자백하는 것은 더욱 아니지. 그건 범인을 도와주는 것이거든. 순간의 고통을 피하려고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 짓을 벌이지는 마. 희생하겠다고 쓸데없는 생각하면 사건만 더 복잡하게 만들 거야.
가져가지 않았으면 끝까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윤은 충고했다.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참고 견디라고, 도둑의 누명은 무덤에 가서라도 벗는다는 옛말이 있다고 위로도 했다.
언젠가는 밝혀지게 될 거니까 힘들어도 참아. 그게 바로 너 자신을 위하는 길이야.
언젠가는 밝혀진다는 윤의 충고는 맞았다. 늦었지만 이제 범인이 나타났다. 죽으면서 양심을 고백했다던 현주, 그 애가 범인이었다. 그녀가 믿고 마음을 터놓았던 친구, 애영이와 함께 삼총사로 불리면서 친했던 사이였는데 현주가 그랬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