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3에 이어) 그녀는 낯이 익었지만 긴 세월 동안 한번도 찾아올 수 없었던 좁은 도로를 향했다. 학교 오는 길에 잠깐 들렀던 기숙사를 향해 아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걸으면서 그녀는 짧은 기차 통학을 멈추고 입사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쌍천관에 살던 학생들도 기숙사가 완성되어 함께 이사했었다. 새 건물이라 기숙사 둘레에는 나무들이 없어 썰렁했다. 주위가 황량하여 입사하는 학생들 모두 묘목들을 심기로 했고, 그녀도 정성껏 심었다. 사감선생님은 자기 나무는 스스로 관리하라고 명령했지만 대부분 아저씨에게 미루었다. 처음엔 그녀도 열심히 물을 주고 얼마나 자랐는지 관심을 가졌으나 자라지 않고 언제나 그대로인 것 같아 다른 아이들처럼 돌보지 않았다. 나무들도 지금은 많이 자랐을 것이었다. 윤도 그녀처럼 나무를 기억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무 심었던 일, 생각나니?"
"그럼, 기억하지. 처음엔 서로 제가 심은 나무가 더 멋지게 자랄 것이라고 다들 내기 걸었잖아. 나중에는 물도 제대로 주지 않으면서, 심을때는 대단했는데 말이야."
“지금은 많이 자랐겠지?"
"몰라보게 자랐어. 벌써 몇 년인데 기숙사에 가면 찾아볼래? 하긴 찾을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나는 어디에 심었는지 기억도 없거든."
그녀는 나무 심은 장소를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사감 선생님 창문바로 앞에 애영이와 현주도 함께 한 그루씩 나란히 심었었다. 하지만 그동안 그것들도 까마득 잊고 있었다. 과거에서 달아나고 싶어서 모두 잊었다. 아프고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들 속에 나무도 있었을 것이다.
"양로원은 그대로 있는 거야? 지금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땐 참 많았었는데."
그녀는 기숙사가 가까이 다가오고, 양로원 건물이 보일 때, 윤에게 살짝 물었다. 그녀가 묻는 의도를 파악한 윤이 어두운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블록 담 안의 무겁게 닫힌 창문을 쓸쓸한 시선으로 올려다보았다. 당시의 따뜻했던 윤의 마음을 생각하자 그녀는 가슴이 뭉클해져 왔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추위에 웅크린 모습으로 양지바른 쪽에 모여 있곤 하였다. 윤은 강의가 끝나고 돌아올 때 마당에 앉아 졸던 노인들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초췌한 노인들을 보면서 윤은 늘 젊고 건강한 자신을 죄스러워했었다. 입을 다물고 양로원 앞을 조심스럽게 걸으며 윤은 노인들이 행여 불편을 느끼지 않을까 배려했었다. 양로원을 지날 때면 그녀도 남다른 생각이 들었다. 희망 없이 죽을 날 만을 기다리며 삶의 의욕을 상실한 노인들을 보면 어릴 적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났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