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에 이어) "나 많이 늙었지? 너는 야! 하나도 안 늙었다. 외국물이 좋긴 좋아."
짙은 화장 탓인지 말투 때문인지 경박함이 느껴졌다. 신선함이 사라지고 몸매도 형편없이 망가진 애영은 예전처럼 스스럼없이 굴었다. 그녀는 애영과 같이 예전처럼 감정을 담아 말할 수가 없었다. 반가움이 쉽게 생겨날 것 같지도 않았다. 손을 맞잡아도, 어깨동무를 해도, 예전의 친했던 감정이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그녀는 대답하는 대신에 어깨를 으쓱들어 올리는 외국식 제스처를 취하며 감정을 드러내는 위기를 피했다.
"그때는 우리가 너무했어. 일부러 그러려던 건 아니었는데 어떻게 그랬는지 몰라."
"꼭 귀신에 홀린 사람들 같았지."
누군가가 애영의 뒤를 이어 말문을 열었다. 그녀가 돌아보자 시선을 마주치는 게 쑥스러운지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누구였더라, 기억을 더듬었다. 늘 멀리서 그녀를 흘깃거리던 소극적인 아이,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그때 그 애는 그녀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던 듯도 싶었다. 모두가 그녀를 외면해서 동정심이 발동해서 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모두가 싫었던 그녀는 접근하는 사람들을 거칠게 쳐냈다. 그 애에게도 그녀가 너무 쌀쌀맞게 밀어했다. 그래서 친구가 되고 싶었던 그 애의 마음을 담아 두지 않고, 아마도 거절했을 것이다.
"말도 마라.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지 뭐. 너무 당황해서 그랬을 거야.어려서 생각도 많이 부족했고, 옛날 일이지만 정말 미안하다. 우리들 모두 제발 용서해 줘라. 너하고도 꽤 친했는데 왜 그때 현주의 말만 들었는지 몰라."
애영이가 사과했다. 힘들고, 죄진 표정이 얼굴에 떠올랐다. 애영의 말이 변명처럼 들렸어도 진심일 수도 있었다. 애영이 현주의 농간을 더 신뢰했던 것은 그녀에게도 의혹을 일으킬 만한 잘못이 있었을 것이다.
"넌, 현주하고도 친했었잖니? 상황이 그래서 너도 현주를 믿을 수밖에 없었고."
"내가 현주를 너무 믿었어. 지금 생각하면 다급했던 탓에 그랬던 게 아닌가 싶어."
애영의 마음은 이해되었지만 그녀는 아직 용서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잘못했으니 용서해 달라는 한마디로 용서를 해야 한다면 그녀가 살아온 세월을 모두 잊어야 했다. 잊을 수 없게 힘겨웠던 시간들을 그들은 모를 것이었다.
그녀는 학생 때, 현주와 가깝게 되면서 애영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 일이 없었다면 셋은 진한 우정을 쌓아올린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애영이 돈을 잃어버린 사건이 벌어지고 세 사람의 관계는 깨졌다. 산산이 부서진 그릇처럼 쏟아 버린 물처럼 서로는 상처 입고 헤어져 다시는 관계를 회복하지 못했다. 훔친 사람에게 전적인 잘못이 있었지만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아 욕심내도록 부추긴 애영에게도 시선들이 곱지 않았다. 애영에게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고 다들 소곤거렸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