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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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함정 25-21
  • 김선옥
  • 승인 2023.10.12 07:51
  • 기사수정 2023-10-12 07: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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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25-20에 이어) “애영이가 어디서 소식 듣고 말해 줘서 알았어. 둘이 고등학교 동창이거든. 친정집도 가깝고. 아마 현주 동생하고 연락이 되었었나 봐."

살아서보다 현주는 죽어서 더 유명해진 것 같다고 했다. 이곳에서도 추모일에 낭독을 하거나 현주의 작품세계에 관한 논쟁들을 벌이고 있다고 했다.

“평론가들이 적극적으로 덤비는 것을 보면 사람들은 그런 문제성 있는 글에 이야기가 더 많은 모양이야. 신문에서 문학에 관한 기사가 나올때 보면 요절한 사람들의 명단에 현주가 끼어 있더라고, 죽기 전까지의 짧은 기간에 다른 사람들은 평생 걸려도 쓰지 못할 엄청난 글을 썼다나, 뭐 그런 식으로.”

“동기 중에 그런 인재가 있었으니 축하할 일이네"

“현주가 거목이 된 걸 보면, 잘못되어도 뭐가 단단히 잘못된 것 같아.”

“글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용서가 된다는 건가? 인간성이 바닥이어도 상관없다는 거"

만약 현주와 위치가 바뀌었으면 그녀는 그럴 용기가 있었을까. 아무리 유명해진다고 해도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죽음이 두려웠다. 미지의 세계 어둠 저 너머의 죽음을 향해 용기를 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나뿐인 목숨을 지키면서 지금까지 버텨 온 것은 아마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당시에도 그녀는 무표정하고, 매사에 도전적인 눈빛으로, 나는 범인이 아니라는 당당함을 풍기고 다녔다. 누가 뭐라고 욕하든 그녀는 떳떳했었다. 그러니 누구에게나 거부감을 일으켰을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해. 말하기 뭣하지만 형편없는 시라고 생각했는데, 읽다 보니 왠지 슬프더라고. 지저분해서 거지 같다고 치부하려는데 읽을수록 묘하게 가슴이 아팠어. 정말 이상한 건 쓰레기 같은 그 글이 현주와 똑같은 느낌이 들더라는 거야."

윤이 부연했다. 윤의 말대로라면 현주는 글자들 안에 스스로를 발가벗겨 드러내었는지 모르겠다. 송두리째 글 속에다 자신을 저장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들여다볼 수 있게 요령을 부렸을 수도 있었다. 삶을 지긋지긋하게 생각하다가 구차해져서 시(詩) 속에 끊임없이 독설을 퍼붓고 죽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한편으론 자살이 쇼였을지 모른다는 의심이 들었다. 현주는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탕자처럼 비럭질하다 고개 숙이고, 돌아온 극적인 배역을 연기할 수 있었다. 인생을 한 무대로 정하고, 생을 각색하여 연출할 소질이 다분한 현주였다. 유명세를 의식하여 마지막 불꽃까지 태우고, 기진해서 소멸해 간 시인으로 남겨질 수만 있다면 현주는 뭐든 했을 것이다. 두려울 것이 아무것도 없는 목숨도 버릴 만큼 현주는 영악한 면이 있었다. 목숨도 버릴 열정적인 시인의 생애는 그럴 듯해서 현주에겐 구미가 당길 법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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