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막내숙모가 나리를 데리고 친정에 가게 되었다. 그 사이 민정이는 둘째 삼촌네에서 지내기로 했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 저 집에 맡겨지는 일에 익숙해졌다. 선화 언니네서 자기도 했고, 구암동 할머니네로 보내지기도 했다. 어디서 자든 며칠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삼촌네는 불편한 집은 아니었다. 삼촌은 민정이를 보면 먹을 것을 사주었고, 숙모도 싫은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민정이는 조심했다. 밥을 먹을 때는 다른 사람들이 먼저 먹을 때까지 기다렸다. 목이 말라도 숙모가 부엌에 있으면 들어가지 않았다. 텔레비전을 볼 때도 한쪽 구석에 앉았다.
그날도 그랬다. 방문 앞에 서 있다가 숙모가 나오자 민정이는 얼른 몸을 비켰다. 문을 잡고 있던 손을 미처 빼지 못했다. 쾅. 민정이는 얼른 손을 잡아당겼다. 늦었다. 손가락 끝이 문틈에 끼었다. “악.” 소리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손톱 밑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확 올라왔다. 민정이는 손가락을 감싸 쥐었다. “왜 그래?” 숙모가 돌아봤다. “아니에요...” 민정이는 얼른 손을 등 뒤로 감췄다.
괜찮아지길 바랐다. 기대와 달리 손가락 끝이 퉁퉁 부어갔다. 손톱 아래는 피가 뭉쳐 붉었다. 그럴수록 민정이는 주먹을 쥐듯 손가락을 말아 감췄다. 하루가 지나자 붉던 손가락이 파래졌다. 밤에는 손가락 끝에 심장이 하나 더 생긴 것처럼 욱신거렸다. 이불 속에 손을 넣고 가만히 있어도 아팠다.
제발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했다. 하지만 다음 날에는 손톱 옆 살까지 부풀었다. 밤새 욱신거리던 손가락은 이제 가만히 있어도 아팠다. 민정이는 손을 더 깊숙이 말아넣었다.
“민정아.” 어느 날 삼촌이 불렀다. “신문 좀 갖다줘.” 민정이는 마루에 놓인 신문을 집어 삼촌에게 가져갔다. “여기요.” 한 손으로 신문을 내밀었다. 삼촌이 받으려다 민정이를 쳐다봤다. “한 손으로 주는 거 버릇없다!”, “죄송합니다.” “얼레? 또 한 손으로?” 민정이는 뒤로 감춘 손에 힘을 주었다. “저쪽 손 줘봐.” 우물쭈물하자 삼촌은 다그쳤다. “어서!” 민정이는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퉁퉁 부은 손가락 끝은 보랏빛이었다. 손톱 한쪽은 들려 있었고 그 아래로 누런 고름이 차 있었다. 삼촌은 한참 동안 그 손을 들여다봤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기 약상자 가져와라.” 민정이가 약상자를 가져오자 삼촌이 뚜껑을 열었다. “손 줘봐.” 삼촌의 요구에 민정이는 얌전히 손을 내밀었다. 소독약을 묻힌 솜이 닿자 손가락 끝이 화끈했다. 저도 모르게 손을 움찔했다. “이 자식아, 아프면 말을 해야지….” 민정이는 괜히 다른 곳을 바라봤다. 삼촌은 입을 꾹 다문 채 상처 주변을 닦았다. 연고를 바르고 하얀 붕대를 천천히 감았다. 그동안 둘 다 민정이의 손가락만 내려다봤다.
“됐다.” 붕대가 손가락을 뚱뚱하게 감싸고 있었다. “민정아.” “네.” “아프면 말하는 거야.” “네.” 민정이는 혼이 난 것보다 더 가슴이 떨렸다. 고개를 푹 숙였다. 삼촌은 다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며칠 뒤 숙모가 민정이의 붕대를 갈아주었다. “니는 아프면 얘기해야제. 이렇게 될 때까지 내비두노?” 경상도에서 온 숙모는 직설적이었다. 민정이는 그게 더 편했다. “니 땜에 삼촌이 밤새 운 거 아나?” “죄송합니다.” “으이그.”
숙모가 새 거즈를 올렸다. “내가 니 삼촌하고 결혼할 때 말이다. 자기한테 큰딸이 하나 있다카더라.” 민정이가 숙모를 쳐다봤다. “나도 놀랐제. 장가도 안 간 사람이 딸이 있다카니.” 숙모가 붕대를 한 바퀴 감았다. “그게 니다.” “저요?” “그래. 자기가 제일 아끼는 여동생 딸이라고. 니 아빠 노릇을 자기가 해야된다고. 내한테 니를 딸처럼 키워줄 수 있겠냐고 묻더라.” 민정이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도 그러더라.” 숙모가 붕대 끝을 눌러 붙였다. “내 딸이 아퍼.”
“다 됐다.” 숙모가 민정이의 손을 툭 건드렸다. 민정이는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하얀 붕대가 손가락을 몇 겹이나 감싸고 있었다. ‘내 딸.’ 민정이는 그 말을 속으로 한 번 되뇌었다. 붕대 끝을 살짝 눌러보았다. 전보다 아픈 게 덜했다.
민정이가 둘째 삼촌네 집에서 돌아왔을 때, 막내숙모는 손에 감긴 붕대를 한참 바라봤다. 그날 저녁, 막내 숙모가 계란에 부친 햄을 내밀었다. “이것도 먹어라.” 다음 날에 밖으로 나가려는데 막내 숙모가 뒤에서 말했다. “너무 늦게 다니지 마.” 민정이는 돌아보며 대답했다. “네.”
며칠 뒤 붕대를 풀었다. 퉁퉁 부었던 손가락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손톱은 빠졌지만, 반달 같은 게 조금씩 올라오고 있었다. 아직 누르면 아팠다. “민정아.” 부엌에서 막내 숙모가 불렀다. 습관처럼 숙모의 목소리를 가늠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밥 먹어.” 민정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방을 나서다 손가락을 한 번 내려다봤다. 점점 예전의 모양을 찾아가고 있었다. 민정이는 손을 펴고 거실로 나갔다.
그때, 마당에서 흰둥이가 짖기 시작했다. “컹! 컹컹!” 쇠줄이 마당을 긁었다. 철그렁, 철그렁. “민정아!” 막내 숙모와 민정이가 동시에 밖을 내다보았다. 엄마가 대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