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이가 판잣집을 드나드는 날이 늘어났다. 학교가 끝나면 발길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그쪽을 향했다. 아이들과 함께 길 위를 떠돌며 어울리는 무리가 늘어나자, 걸어서 족히 30분은 걸리는 나운동까지 보폭을 넓혔다. 택지개발이 한창이라 아직 아파트가 다 들어서지 않은 그 동네는 늘 축축했다. 공사판 특유의 비릿한 흙내와 쇠 냄새가 뒤섞여 올라왔다. 돌아오는 길이면 운동화는 어김없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굳이 닦아내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들어가도 그 발끝을 들여다봐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운동에 새로 생긴 시민회관 뒤편의 어둠은 짙었다. 마무리가 덜 된 공사판은 아이들이 숨어들기에 딱 좋았다. 누군가는 담배를 피웠고, 누군가는 지나가는 아이의 호주머니를 뒤졌다. 본드가 묻은 비닐봉지와 빈 부탄가스통이 뒹구는 그곳엔 규칙도, 제재도 없었다. 서로의 사정이 비슷했기에 긴말이 필요치 않았다. 그저 같은 편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민정이도 조금씩 그 거친 공기에 물들어갔다. 말투가 짧아졌고, 표정은 눈에 띄게 거칠어졌다. 학교 담장을 넘는 날이 잦아질수록 장지동 연립과 친척들 사이에서는 수군거림이 독버섯처럼 퍼졌다. 사람들은 막내 숙모의 눈치를 보느라, 민정이를 옹호하기보다 문제 있었던 아이로 몰아세우는 쪽을 택했다. “원래 좀 이상했잖아.”, “걔 집안이 그렇지 뭐.” 근거 없는 비난들이 앞섰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훨씬 수월하고 뒤탈 없는 처세였을 게다.
한번은 둘째 삼촌 가족이 해수욕장에 가게 되어 민정이를 챙긴 적이 있었다. 삼촌의 손에 이끌려 집 안으로 들어선 민정이를 보고, 둘째 숙모는 아이를 조용히 따로 불렀다. “민정아, 옷 좀 갈아입고 와.” 잠깐 뜸을 들이다가 덧붙였다. “막내 숙모한테는 절대 말하지 말고.” 다정한 배려가 아닌, 단도리였다. 지저분한 민정이의 차림새 때문에 자신들까지 욕을 먹을까 봐, 혹은 집안의 실세가 된 막내 숙모의 심기를 건드릴까 봐 미리 싹을 자른 것이다. 결국 민정이는 피서 대열에 끼지 못했다.
아이는 어른들의 외면에 점차 익숙해져갔다. 그동안 민정이네를 시기했던 친척들은 모인 자리에서 기다렸다는 듯이 쑥덕댔다. “쟤 때문에 창피해죽겠어. 조카라는 것을 아는 선생님들이 공부 좀 시키래잖아.” “중학교에 전교 5등으로 들어갔다며?”, “지금은 100등 안에도 못 든데.”, “딸 하나여도 공부 잘한다고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문제아야, 문제아.” 한때 민정이라면 끔찍이 아꼈던 삼촌들도 아내들의 등살에 슬그머니 눈을 감기 시작했다.
아버지를 잃고 엄마마저 연락이 닿지 않는 외동아이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피곤한 일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척하고, 다수의 비난에 동조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훨씬 편했다. 오히려 나른한 동네에서 낙인찍힌 민정이의 일거수 일투족은 그들에게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되어주었다.
이제 화려한 옷차림을 뽐내던 공작새도, 말없이 단정했던 책벌레도 사라졌다. 사람들의 뒷담화 거리인 장지동 연립의 이방인만이 남았을 뿐이다. 나운동의 질척이는 흙탕물이 운동화 천 깊숙이 배어들듯, 민정이의 삶에도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번져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