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민정이는 어둠이 장지동을 완전히 덮을 때까지 길 위를 떠돌았다. 집집마다 불이 켜졌다. 창틈으로 새어 나온 빛이 골목 바닥을 덮었다. 민정이는 몇 번이고 걸음을 늦췄다. 결국 어느 집 앞에서는 끝내 멈춰 섰다. 도란도란한 웃음소리와 구수한 찌개 냄새. 민정이는 잠시 그 온기 앞에서 서성댔다.
민정이는 창에 비친 제 얼굴을 잠깐 보다가, 안을 살짝 들여다봤다. 따뜻한 저녁, 함께 둘러앉은 가족, 정해진 의자. 그 안에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젠가, 나도 저런 집을 가질 수 있겠지. 그 상상만으로 차가운 밤공기를 견딜 수 있었다.
민정이는 다시 걸었다.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아이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열린 교문 사이로 이끌리듯 발을 들였다. 소리를 따라 운동장을 가로지르자, 독서하는 소녀상 그림자 아래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몇몇은 바닥에 누워 있었고, 몇몇은 서서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민정이가 다가서자 시선이 한꺼번에 쏠렸다.
그중 한 아이가 민정이를 알아봤다. 말랭이 동네에서 보았던 아이였다. “니가 여기를 왜 와?” 아이는 의아스러운 눈길로 위아래로 훑더니 슬그머니 자리를 비켜주었다. 발치에 널브러진 것들이 보였다. 빈 부탄가스통, 구겨진 본드 주머니, 입을 벌린 비닐봉지들.
어둠 속에서 몇몇 아이들이 기괴한 모습으로 누워 있었다. 땅바닥에 누운 아이 하나가 허공을 향해 손을 휘저으며 웃었다. 무언가 중얼거리다 갑자기 자지러지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아이도 따라 웃었다. 민정이는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구경하는 아이들은 낄낄거리거나 무심하게 욕설을 툭툭 던졌다. 민정이는 홀린 듯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조금 전, 창밖에서 훔쳐보았던 그 따뜻한 불빛의 잔상이 아직 눈에 남아 있었다. 아까 보았던 장면과 눈앞의 풍경이 이어지지 않았다. 같은 밤, 같은 동네에서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말랭이 아이는 멍하게 서 있는 민정이를 계속 지켜보다가 낮게 읊조렸다. “가.” 민정이 머뭇거리자 다시 한번 쐐기를 박듯 말했다. “집에 가. 여기 다시는 오지 마.” 그것은 경고이자, 마지막 남은 동질감에서 우러나온 밀쳐냄이었다. 민정이는 아무 말 없이 그곳을 빠져나왔다. 등 뒤로 아이들의 기괴한 웃음소리가 뱀처럼 길게 따라붙었지만, 민정이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