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대각산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저 멀리 홀로 떠 있는 섬들이 꼭 민정이의 마음 같았다. 밀물이 들어오면 세상과 연결된 길이 끊기고, 사방이 차가운 물줄기에 갇혀버리는 고독한 땅. 민정이는 제 마음 주위에 스스로 깊은 바다를 만들었다. 누구도 건너올 수 없고, 자신 또한 나가지 않아도 되는 단단한 ‘섬’이 되기로 한 것이다.
섬은 외롭지만 안전했다. 적어도 기대했다가 무너질 일도, 믿었다가 배신당할 일도 없었으니까. 민정이는 그 섬의 해안선을 따라 자존심이라는 방파제를 높이 쌓았다. 그리고 그 성벽 안에서 숨소리를 죽인 채, 다시는 오지 않을 엄마의 요이땅 소리와 아버지의 닳아버린 구두 뒷축을 기억의 창고에 감추었다.
하지만 바다는 늘 평온하지 않았다. 민정이가 아무리 단단하게 빗장을 걸어 잠가도, 예고 없이 밀려드는 파도는 섬의 기슭을 사정없이 때려댔다. 장지동 연립의 빈방을 차지한 막내 숙모는 민정이에게 그런 존재였다. 신혼의 달콤함을 방해받고 싶지 않은 숙모의 짜증은 거친 파도가 되어 민정이라는 작은 섬을 시시각각 집어삼키려 들었다. 숙모는 민정이가 쌓아 올린 침묵의 방파제를 비웃듯, 가장 아픈 곳만 골라 날카로운 언어의 포말을 뿌려댔다.
그 무렵 민정이는 제집 안에서도 길을 잃었다. 숙모가 들어온 뒤로 타인의 영역이 되어버린 집에서, 민정이는 안방이라는 이름의 무인도에 유배되었다. 거실로 나가는 문고리를 잡고 몇 번을 망설이다 겨우 나선 곳에서 마주치는 것은, 늘 얼음장처럼 차갑고 무표정한 막내 숙모의 얼굴이었다.
민정이의 고립은 집 밖에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형형색색 화려했던 도시락에는 어느덧 시금치나 단무지만 덩그러니 있었고, 단정했던 옷은 때에 절고 운동화는 밑창이 떨어졌다. 사람들은 달라진 민정이를 금방 알아봤다.
연립주택 사람들은 막내 숙모의 눈치를 보느라 민정이를 집에 부르지 않았고, 친척들조차 막내 숙모의 비위를 맞추며 민정이의 험담에 가담했다. 한때 머리 좋고 예쁘다며 칭송받던 민정이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철없고 지저분한 아이’라는 낙인만 남았다.
어느 날, 인천 큰숙모가 장지동을 찾았다. 외갓집 식구들과 사이가 좋지 않던 그녀는 막내 숙모와 죽이 맞아 한참이나 시댁 흉을 늘어놓았다. 마침 집에 들어오던 민정이에게 막내 숙모는 잠시 눈을 마주치고는, 미소를 지으며 비수를 꽂았다.
“민정이가 왜 이렇게 지저분한가 했더니, 엄마 닮아서 그렇구나.” 그 말은 큰 숙모의 외면으로 어린 동생들을 떠맡았던 엄마의 고단한 삶을 통째로 모욕하는 말이었고, 어린 민정이에게 생채기를 내려는 잔인한 의도였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가슴을 졸이며 방문을 나서야 하고, 집 안 가득 라면 냄새가 진동해도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집에서는.
민정이는 무인도 밖으로 나가는 대신, 스스로 길을 잃기로 했다. 집에 늦게 들어가기 위해 민정이는 어두운 골목을 배회하는 아이들과 섞여들기 시작했다. 드센 파도에 시달리던 섬은, 스스로 바다 밑으로 가라앉기를 택한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