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에 이어)어머니가 잡다한 일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아버지의 가출이 확인된 후였다. 아버지는 인근의 다방 여자와 눈이 맞아 노예처럼 부려먹던 어머니를 떠났다. 아버지가 사라진 일은 다행이었다. 바람기로 거덜이 나기 시작한 살림은 아버지가 빚까지 얻어 여자와 줄행랑을 놓은 후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다. 기둥뿌리마저 뽑힌 상태에서 철없는 딸과 남겨진 어머니는 고단하게 살아야 했다. 빈손으로 여자 혼자서 아이와 함께 사는 일은 버겁고 힘들었을 것이다. 유림은 죽지 못해 살았을 죽음보다도 고생스럽던 어머니의 삶을 기억한다.
어머니는 오로지 어린 딸을 위해 악착같이 버텼다. 유림이 하나를 바라보고, 험난한 세상을 오기로 살아 내었다. 말처럼 쉬운 노릇은 아니었지만 키우고 뒷바라지하기 위해 고생스럽고 어려운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다행히 쓰러지지 않고, 말로 형용할 수 없이 고생하면서도 내색하지 않았다. 삶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지친 어머니의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며 자랐다. 유림은 어머니가 살아온 고달픔이 머리를 비집고 있어 결혼의 환상에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식식하게 견디며 성장기를 거쳤고, 결혼이란 단어를 기피했다. 서른 살 노처녀로 남아 있던 것에 조급함이 없었던 것은 어리석지 않은 스스로가 환상의 늪에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때문이기도 했다.
유림은 처음부터 바짝 그를 경계하였다. 잔뜩 웅크린 자세로 아무것도 보여 주지 않으려고 조심했는데 만난 지 이틀째였던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가 청혼했다. 늦은 밤이었고, 조명이 낮은 칵테일 바였다. 그는 술에 흠씬 취한 상태였는데 테이블에 엎드린 채 말했다.
"결혼합시다."
느닷없는 말에 그가 취해서 장난하는 것이려니 생각했으므로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웃기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요. 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니지요.”
“나는 웃기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농담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는 꽤 진지한 어조였다. 취한 상태이면서도 그는 유림의 반응에 청혼을 납득시키려고 기를 썼다. 이후로 좀 떨떠름한 관계가 되었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그는 적극적으로 전화를 걸어오고 찾아오곤 했다. 계속 어정쩡한 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 유림은 과거의 일들과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때, 일어난 일은 제겐 잊기 힘든 커다란 상처가 되었지요. 나는 상처가 되었지요. 나는 상처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겁니다."
그는 조용히 듣고만 있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