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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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접목 13-5
  • 김선옥
  • 승인 2023.06.10 08:13
  • 기사수정 2023-06-10 08: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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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4에 이어)남편은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몰라도 유림의 입장에선 그랬다. 솔직히 얼굴조차 흐릿하지만 지금까지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으니 긍정적인 평가는 당연하다.남편은 밑바닥 깊이 숨어 있는 유림의 상처를 이해하고, 치유해 주려고 애썼다. 아내의 과거에 대해 냉혹한 대부분의 남자들과 달리 그는 상처의 예민한 부분들을 토닥이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다. 겉으로 말하지 않았지만 짧은 그와의 삶 속에서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유림이 겪은 과거에 화내거나 손가락질한 적이 한번도 없던 그에게 고마운 것은 그도 견디기 힘들었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번 촛불을 켜고, 그를 위해 향을 피우며 그에 대한 짧은 기억이나마 잊지 않으려는 것은 그런 것들에 대한 보답일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유림은 남편의 얼굴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잊지않기 위해서 사진을 오랫동안 쳐다보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얼굴이 긴 편인지 아닌지, 동그란 얼굴인지, 네모난 얼굴인지 생각이 안 난다. 눈썹 모양이 어땠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부끄럽지만 눈에 쌍꺼풀이 있었는지조차 모르겠다. 어느 때는 둥글고 눈꼬리가 쳐진 웃는 얼굴인 것도 같고, 어느 날엔 전혀 그 반대인 얼굴이었던 것 같아 헷갈린다. 사랑하거나 좋아해서 결혼했던 게 아니어서 생김새 따위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남편이라서 꼭 그랬던 것은 아니고 다른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다.

동료의 소개로 남편을 만났을 때 결혼은 염두에 없었다. 자신과 상관없는 미지의 세계라고 단정하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은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탓일 것이다. 결혼이란 유림에게 신비한 단어가 아니었다. 타인들이 지나치다고 여길 만큼 고집스럽게 결혼을 기피했던 것은 과거의 기억, 끔찍하고 아픈 폭행이 어둠 속에 숨어서 날카로운 발톱을 숨기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과거의 기억이 아니더라도 결혼과 불행을 유림은 같은 등식으로 연결했다. 어려서부터 머릿속에 뿌리가 박혀 있던 불행한 결혼은 상처와 평행선에 놓여 있어 매력을 느낄 수가 없었기도 했다.

파탄에 이른 어머니의 결혼은 유전인자로 작용할 것이라고 여겼고, 그런 근심은 결혼의 울안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에 방해가 되었다. 어머니의 결혼 생활은 한마디로 불행했다. 아버지는 소문난 바람둥이였으며 유림이 태어나기 전부터 여자들을 집으로 들였다. 줄곧 바뀌는 그녀들의 뒷바라지에 어머니는 허리를 펼 겨를조차 없었다. 아버지 곁에 거머리처럼 붙어 있던 여자들은 어머니의 온갖 시중을 받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뜻한 밥을 짓느라 무더운 여름날 찜통 같은 부엌에서 땀을 흘렸고 여자들이 벗어 놓은 많은 옷가지들을 빨기 위해 추운 겨울에 시린손을 불어 가며 냇가에 나갔다. 깨끗이 빤 옷들을 구김살 없이 다림질하여 면전에 대령하며 겪었을 어머니의 굴욕을 유림은 시리게 헤아렸다.

부처님도 돌아앉는다는 시앗을 위한 수고는 어머니의 가슴에 얼마나시커먼 멍을 만들었을까. 속절없이 왜 해 줘야 되느냐고 유림이 다그친 것은 굴욕을 상기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불호령이 떨어질 텐데 나 하나 몸 고달프면 그만일 것을 집안 시끄럽게 할 필요가 없다고 어머니는 조용히 대꾸하곤 했다. 하녀처럼 수발을 들며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고, 끓는 화를 내색하지 못한 세월이 어머니의 운명이라면 그대로 전이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유림이었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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