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에 이어)소문들이 무수하게 나돌았다. 모두 외삼촌에게는 불리한 소문이었다. 행방이 묘연한 정황이 소문들을 더욱 부추겼다. 이북으로 넘어갔을 것이라거나 죽었다는 둥, 동네에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외삼촌은 산속의 동굴에서 숨어 살았다. 산에서 지낸 혼자의 생활은 자신과의 싸움이나 진배없었다. 힘들고 고통스러웠다. 여름은 그런대로 지낼만했지만 겨울엔 먹을 것도 없었고, 추위를 견디기가 너무나 어려웠다. 그런 어려움은 죽음에 대한 공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죽음은 추위나 배고픔보다 더 끔찍한 두려움이었으므로 얼마든지 견딜 수 있었다. 외삼촌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며 온갖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듯 생각이 들었어. 그때야 비로소 산에서 나올 결심을 했지. 전쟁의 흔적이 얼마간 가셨을 것이고 죽은 사람들의 가족들도 상처를 치유했을 만큼 시간이 흘렀으리라고 짐작했고."
외삼촌은 오래된 기억들을 회상하여 조심스럽게 퍼즐을 맞추어 말을 이었다.
“짐작이 틀렸나 보군요.”
냉소를 가득 담은 해열이 힐난조로 말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았어. 내 생각이 짧았던 게지. 오랜만에 고향에 돌아왔는데도 사람들은 나에게 여전히 살의를 품고 있었거든.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지서에 신고했어. 행방불명되었다가 갑자기 나타나거나 수상한 사람을 신고하면 포상금을 주겠다는 포스터가 여기저기 붙어 있던 때라서 곧바로 붙잡혀 들어갔단다."
예전에 살던 곳, 아는 사람들이 있는 장소로 돌아온 것은 실책이었다.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낯선 곳에 거처를 정하거나, 아예 잠적했어야 했다. 못마땅하게 여기고 미워하는 사람들 속에 섞이고 싶었던 마음은 외삼촌의 잘못된 판단이었다. 멀쩡하게 살아 있는 외삼촌을 보자 사람들은 분개하였고, 어떻게든 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들은 죄를 씌워서라도 화를 풀려고 별렀다.
'나쁜 사람들이여. 그 사람들 모두 천벌을 받고 말 거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아들에게 간첩 누명을 씌운을 고향사람들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붙잡히고 나서 나는 다 말했어.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동굴에서의 삶, 외롭고 힘들었던 생활과 도망쳤던 이유도 숨김없이 모두. 그런데 아무도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인정하려는 기색조차 없었어. 지서에 있는 사람들도 더러는 날 미워했는데 가족 중에 죽은 사람들이 있었거든."
“신뢰를 얻지 못한 건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었겠죠.”
해열이 항변했다. 그건 다른 문제였지만 해열은 여전히 비판적이었다. 외삼촌에게 드러낸 반감을 멈추지 않고, 태클을 걸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피의 현장을 도망친 건 잘못된 행위니까. 그때 당시에는 어려서 그랬는지 몰라도 죽는 게 너무 무서웠어. 갑자기 많은 죽음을 겪자 내 정신이 아니었지. 두렵고 겁이 났어. 정말 죽고 싶지 않았거든 삶에 대한 애착이 커지니까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더라. 살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뿐이어서 비겁하게 도망갔었어. 나는 간첩이 아니야. 간첩이 무엇인지도 그땐 정말 몰랐어."
외삼촌이 절박하게 변명했다. 믿어 달라는 눈빛으로 방 안의 식구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애원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가족들에게나마 진실을 밝히고 싶은 외로운 몸부림이었다.
“알아요. 오빠가 무슨 간첩이에요. 말하지 않아도 나도, 우리 애들도다 그렇게 믿고 있고요. 오빠가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감옥살이했다는 것도 다 알고 있고요.”
어머니가 드디어 울음을 터트렸다. 식구들이 아니라고 아무리 말한들 무슨 소용이라. 그때도 식구들 말고는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았는데. 그래서 그렇게 오랜 세월 갇혀서 지내야만 했는데, 그녀는 할머니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세상은 너무나 다르더라. 그때 나는 너무 어렸고, 어리석었어. 철부지였던 거지. 한낮 겁쟁이에 불과했던 내가 재판을 거듭하다 보니 거창한 인물이 되어 있더구나 보잘것 없었던 내가 말이야."(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