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에 이어)시대가 시끄러울 땐 병신처럼, 바보처럼 그렇게 살아야 하는 거란다. 그러나 어디 전쟁이란 게, 똑똑하고 잘난 사람이라고 해서 좌지우지할수 있는 거더냐, 할머니는 외삼촌의 이야기를 꺼낼 때면 늘 그런 식으로 말문을 열었다.
사람들은 외삼촌을 믿었던 모양이었다. 전쟁의 어려움속에서도 그들을 외삼촌이 무사히 지켜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했다.
할머니는 검버섯 핀 손등으로 눈물을 닦으며 외삼촌이 휘말린 사건들을 필름 돌리듯 기억해 내었다. 외삼촌이 이장으로 있는 동안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엔 유난히 전쟁의 바람이 심했고 동네의 많은 사람이 죽었다던 할머니의 말을 그녀는 기억했다.
"전쟁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서로가 서로를 죽였어.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을 지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그러나 내 힘으로 죽는 사람들을 지켜 낼 수는 없었어. 내 목숨도 아슬아슬한 시절이었으니까, 죽음이 내 책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서로를 향한 미움이 지나친 탓이었으니까."
외삼촌도 할머니처럼 그렇게 말했다. 죽은 자들의 가족은 할머니나 외삼촌의 말과 다르게 그들의 죽음을 모두 외삼촌 탓으로 돌렸다. 잘못이 있다면 외삼촌이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 사실 하나로 사람들은 죽은 사람들의 목숨을 외삼촌이 훔쳤다고 믿었다. 죽은 이들이 외삼촌을 대신했다고 오해했다. 할머니의 넋두리에서 그녀는 이미 그런 상황들을 알고 있었다. 당시를 생각하듯 외삼촌이 진저리를 쳤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야. 그들은 나도 죽이고 싶어 안달했단다. 그래서 도망쳤어. 두려웠으니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살고 싶어서 몰래 도망했어. 정신없이“
전쟁이 끝난 이후 모두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외삼촌은 그들이 두려웠다고 말했다. 비겁하게 현장에서 도망친 사실은 실수였다. 그러나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번뜩이는 살기(殺氣)를 피해 어떻게 하겠는가. 도망은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외삼촌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경황도 없었을 외삼촌의 행위를 이해했다. '도망친 건 잘한 일이었어. 괜찮을 것이라고 그냥 동네에 남아 있다가 여럿 죽었응게. 죽은 사람들도니 외삼촌처럼 도망쳤더라면 살었을 틴디. 그때 신권이도 잡혔으면 영락 없이 총살 당혔어"
할머니도 말씀하셨다.
"아무에게 알리지 않고 숨었어. 내가 함구했던 것은 만일을 위해서였다. 식구들이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거든.”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셨다.
"그 시기가 얼마나 오래였는지 몰라. 나는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는데 삼 년이나 지났더구나 그 세월 동안 나에 대한 온갖 억측이 나돌았는데 나는 그것도 몰랐지."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