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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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자유의 덫 13-4
  • 김선옥
  • 승인 2023.04.01 06:48
  • 기사수정 2023-04-29 06: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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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표지그림/joana(작가의 딸)

(#13-3에 이어) "나는 아무것도 몰라. 아무 말도 듣지 못해서, 정말 모르고 있으니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다 말해라. 전부 다, 하나라도 숨길 생각하지 말고."

외삼촌은 모든 것을 알고 싶은 갈망의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하나도 남김없이 듣고 싶어 하는 눈빛에도 그녀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나는 스물에 감옥에 들어갔어.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그만큼 오랜 기간인 셈이지. 지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해도 누구도 나를 나무랄 수는 없어. 너무 긴 시간이 흘러 버렸단 뜻이기도 하지."

조용하고 그윽한 목소리로 외삼촌이 말하기 시작했다.

“갇혀 있는 내내 나는 모든 걸 그리워했단다. 가족들 역시도 그러했고 내게 가족이란 여기 모인 게 전부지만 말이야."

외삼촌은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었다. 할머니가 살아 계셨을 적에 외삼촌에게 보내기 위해 일부러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외삼촌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는 이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랬지. 때때로 꿈속에서 너희들을 만나기도 했고, 그러면서 자유를 얼마나 갈망했는지 몰라. 갈망이 이루어지지 않아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 많았는데."

잠깐 말을 멈추고 해열을 바라보는 외삼촌의 눈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 들어 있었다. 외삼촌의 어떤 말도 귀담아 듣지 않겠다는 듯 해열은 여전히 외삼촌을 노려보며 식식대었다.

"나는 모범수였어. 그 속에서 착실하고 성실하게 수감 생활을 했지. 고통스러웠지만 최선을 다해서 너희들이 보고 싶어 애타하던 내게 자유가 너무 늦게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죽기 전에나마 그곳을 벗어나 원하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여겼어. 그런데………."

외삼촌은 말끝을 흐렸다. 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침착하지만 애잔함이 깃들여 있었다. 무언가 대꾸해야 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대신에 해열이 입을 열었다.

"난, 사관학교에 가고 싶었어요. 전투기 조종사가 어릴 적 내 꿈이었거든요."

해열의 목소리에는 아직도 미련이 묻어 나왔다. 해열은 원하는 학교에 거뜬히 합격했다. 까다롭고 어렵다는 신체검사도 여유 있게 통과했다. 충분히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학교에서 탈락한 것은 신원조회 때문이었다. 미혼인 외삼촌은 할머니와 함께 그의 호적 속에 들어 있었다. 처가살이를 했던 아버지의 사망신고로 그를 호주가 되게 했으며, 반공을 국시의 제 일로 삼는 나라가 빨갱이 외삼촌을 감옥에 두고 있는 해열의 꿈을 좌절시켰다. 감추었던 사실을 외삼촌이 눈치를 챌까 봐 그녀는 조마조마했다.

"합격을 하고도 난 그 학교에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신원조회의 빨간 줄이 내 꿈을 박살냈거든요. 당신 덕택이죠. 붉은 줄 말예요. 그게 뭔지 알기나 하세요?"

해열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그녀는 비명을 지를 뻔했다.(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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