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에 이어)“잘난 당신 덕에 난 날개를 잃어버렸어요. 날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단 말입니다."
해열은 심한 술 냄새를 풍기고 있었지만 정신은 말짱한 것 같았다. 충혈이 된 눈과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은 금방이라도 분노를 쏟아 낼 것럼 위태로웠다.
“그게 무슨 못된 말버릇이여. 외삼촌이 그동안 고생을 얼마나 하셨는지 모르는 게여?"
아무것도 모르는 외삼촌은 불의의 일격에 일순 당황한 눈치였다.
"이놈아, 위로는 못할망정 무슨 미친 소리여? 왜 헛소리를 나불대고 그러냔 말이여?"
어머니는 해열을 향해 화를 내었다. 어머니는 아들이 그렇게까지 나오리라고 가늠하지 못한 것 같았다. 설마 해열이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으므로 그녀도 동생의 돌연한 분노에 난감했다. 가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느낌에 아득했고, 동시에 난처한 상황을 어떻게 무사히 모면해야 좋을지 머리를 굴렸다.
"왜요? 내 말이 틀리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그랬으면 오죽 좋았겠는가. 아, 엉겁결에 당한 외삼촌의 불쌍한 표정. 외삼촌은 자신을 향해 쏟아 내는 해열의 말을 이해하려 애쓰는 듯 보였다. 그녀는 민망해서 고개를 돌렸다.
해열의 분노는 당연했다. 그렇더라도 가족들이 모처럼 모인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이제 막 출감해서 세상과 주위에 익숙하지 못한 외삼촌에게 그럴 순 없었다. 가족이라지만 서로가 서먹하여 아직은 낯설 것이었다. 해열의 행위는 바르지 않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외삼촌에게 기회를 주지 않고 덤비는 것은 못할 짓이었다.
“술을 많이 마셔서 이성을 잃은 모양이다. 넌 지금 너무 취했어."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진 그녀는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지만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취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오늘 쏟아 내지 못하면 아무 말도 결코 못할 거라고요."
어떻게라도 수습을 해야 했으므로 그녀는 동생을 바라보며 호소하듯 말했다.
"네 말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야. 그렇지만 해열아, 지금의 네 태도는 옳지 않아. 당장 외삼촌께 사과해라."
다투어 좋을 게 없었다. 가슴속에 가득 키워 온 증오를 펼쳐 보인다면 해열은 방 안의 기류를 온통 상처로 채울 것이었다. 가난했던 집안에서
수재인 그가 이룰 수 있던 꿈을 어떻게 노략질당했는지, 자신만만하고 도도했던 그의 인생이 어둡게 채색된 긴 어째서인지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건 모두 외삼촌 때문이었다. 연좌제가 시퍼렇게 살아서 해열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녀는 해열이 갖고 있던 사진을 떠올렸다. 검은 사각 틀에 끼워진 사진이 책상 한쪽에 세워져 있었는데 젊은 시절에 찍은 외삼촌의 사진이었다. 누렇게 바랜 사진을 어디서 찾았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 외삼촌은 그 사진 속에서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해열은 화나는 일이 있을 때마다 사진을 향하여 커다랗게 눈을 치켜뜨고 노려보곤 했다.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게 자신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라고 대꾸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