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에 이어) "결혼을 약속한 사람이 서울대 다니고 있어. 내가 학비를 대주고 있는데 휴학하랄 수도 없고, 걱정이야. 여길 나가면 빨리 다른 직장을 잡아야 할 텐데"
마담이 가져온 차를 입에 가져가며 김 언니가 힘들게 입을 열었다.
"그런 멍청한 바보짓을 왜 해? 그렇게 힘들게 돈 벌어 기껏 가르쳐 놓고, 그 사람이 딴 여자하고 결혼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차라리 그 돈으로 자기가 공부하지. 남자들은 다 도둑놈이야. 서울대까지 다녔는데 고등학교 나온 여자랑 결혼하겠어?"
절박한 그 순간에도 오 언니는 김 언니에게 딱하다는 투로 충고했다.왜 그런 바보짓을 하는지 모른다고, 넌 절대로 그런 멍청한 짓은 하지말라고, 전에도 오 언니는 내게 말했었다. 김 언니가 하는 것이 생긴 거하고는 다르게 영 맹하다면서 내게 여러 번 흉을 보기도 했다.
“고향 친구고, 식구들도 다 아는 사이야. 그럴 사람도 아니고. 그것보다도 당장 직장을 구할 일이 걱정인데 어쩔지 모르겠어. 취직하기가 어디 쉬워야지."
"그거야 지금은 돈이 필요하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지금이라도 잘 생각해 봐. 남자 출세시키고 버림받은 여자들의 이야기 어디 한두 번 들어봤어? 잡지엔 그런 사연들이 수두룩하다고."
오 언니는 잡지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었다. 오 언니의 말이 옳은지 틀린지는 김 언니가 결혼한 후에나 확인할 수 있는 일이어서 나는 아무 말없이 차를 마셨다. 차 맛은 좋았다.
며칠 후, 사람들은 꼭 필요한 인원만 남고, 다 해고되었다. 관리과에서도 계장 하나만 남았다. 회사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사람보다 물건이 더 중요한 터라 노련한 공원들만 남았다. 회사에서 털려 앞으로 살아갈 일이 끔찍해서 나는 차라리 숙련공이면 이렇게 처리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물건이 더 우선되는 시기라서 사람의 가치가 더 형편없었다. 관리장부에서 제품이 사람보다 우선하는 이유를 나는 새롭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때의 경험 이후, 살아가면서 나는 사람보다도 우선하는 것들이 이 세상에 참으로 많이 있다는 것을 차츰 인식하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회사가 있던 그곳을 지나쳤다. 회사의 건물들은 간 곳이 없고, 근방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회사가 있던 부근에 서서 한동안 나는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같이 일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추억을 더듬었다.
그 시절의 근처에서 서성이던 사람들, 사장은 자신의 말처럼 과연 회사를 크게 키웠는지, 계장은 지금도 남진의 노래를 즐겨 부르고 있는지, 오래된 애인과는 결혼을 했는지도 생각났다. 나씨 아저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어떻게 살았는지, 아들은 아저씨의 기대처럼 훌륭한 젊은이가 되었는지 궁금했다. 김 언니는 약혼자와 계속 사귀어 결혼까지 골인했는지 아니면 오 언니의 말처럼 헤어졌는지도 궁금했다. 오 언니는 늘 입버릇처럼 말하던 집안 좋고 부유하게 자란 남자와 선을 봐서 멋지게 결혼했을지, 아직도 그런 남자를 찾아 헤매고 있는지도 알고 싶었다. 윤숙의 손가락은 잘 붙어 아무 이상이 없는지, 그녀가 소원하던 할머니와 동생을 서울로 데리고 왔는지 어땠는지도 궁금했다. 명자는 최 반장과 잘지내는지, 김 기사는 다른 여자를 꼬드겨 결혼하여 청주의 부모님께 효도할 아들을 낳았는지도 알고 싶었다.
사람들과 함께 떠오르는 기억들이 꼭 아팠다고 할 수만은 없었다. 더러 행복한 기억들도 있었다. 그리고 기억 속의 사람들 모두는 이제 나이가 꽤 들었고, 늙었을 것이었다. 아침마다 눈 비비고 나가 얼굴을 마주보며 인사하던 그들도 지금은 다들 변해서 알아보지 못할지도 몰랐다.거리에서 내 곁을 스쳐 가도 그들을 못 알아보고 그냥 지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나는 그들이 간절히 그립고, 보고 싶었다. (끝)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