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에 이어) 공장 안은 더 더웠다. 실내는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고, 냉방시설도 되어 있지 않은 터라 공원들의 체온과 열기에 찜통이었다. 무더위 속에서 땀으로 목욕하며 공원들은 물건들을 만들었다. 기계에서 빼낸 물건을 남자 공원들이 한쪽으로 던져 주면 여공들은 칼로 끝을 다듬거나, 거칠어진 물건의 마무리를 했다. 더러는 기계가 돌아가는 근처에서 일을 거들었다. 그러다 보니 작업장에서 자칫 딴 생각하거나 눈을 팔다간 다치는 일이 생겼다.
명자가 윤숙을 부축하고 관리실에 나타났다. 키가 크고, 얼굴이 넙적한 윤숙은 핏기가 가신 얼굴이었다. 윤숙은 손에 수건을 칭칭 감고 있었다. 옷과 앞자락에도 핏자국들이 뭉쳐서 묻어 있었다.
“윤숙이 다쳤어요. 빨리 병원에 가야 해요.”
명자가 대신 말하며 눈물이 그렁해서 윤숙을 바라보았다. "어쩌다."
사고는 대부분 개인의 부주의로 발생했다. 윤숙의 사고도 아마 부주의 탓일 것이다.
"요즘 계속 야간 일을 했어요. 돈이 많이 필요했거든요. 어제도 늦게까지 일하고, 잠을 통 못 잤는데, 쉬라고 말해도 애가 말을 들어야죠. 꾸역꾸역 일해야 한다고 고집을 피우더니."
윤숙은 혼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소녀가장으로, 16살인데도 비교적 숙련공이었다. 아버지는 배를 타고 고기잡이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바다에 빠져죽고, 어머니도 병으로 죽었다고 했다. 척박한 고향에는 가진 것 없이 병든 늙은 할머니와, 어린 두 동생들이 그녀가 다달이 부쳐 주는 돈에 기대어 살아간다고 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더 억척스럽게 일하고, 돈에도 지독했다. 윤숙에겐 짠순이, 또순이, 억척이 같은 별명들이 따라다녔다.
윤숙은 언젠가 내게 찾아와 눈물을 흘리며 그런 소리를 들어도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든지 돈을 모아서 집을 마련하겠다고 입술을 깨물던 윤숙의 희망은 할머니와 동생들을 서울로 불러와 다 함께 살을 비비고 사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윤숙이 다친 일이 마음에 걸렸다. 얼마나 다쳤는지 모르지만 일을 못하면 그만큼 작업량에서 모자라 봉급의 액수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나는 지정병원으로 보내는 의뢰서에 재빠르게 사인해서 명자에게 들려 주었다. 작업하다가 다친 공원들을 병원에 보내는 일도 내가 하는 업무 중의 하나였다. 치료하거나, 입 퇴원하는 절차, 병원에서 행하는 나머지 일은 총무과에서 알아서 처리했다. 외뢰서만 써 주면 내 할 일은 다하는 셈인데도 윤숙을 병원에 보내 놓고 못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윤숙이가 불쌍했지만 의뢰서를 써 주며 빨리 병원에 가라고 성화대거나, 치료가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나는 빠른 시일에 윤숙의 손이 나아서 다시 일터에 복귀할 수 있기를 빌어줄 수 있을 뿐이었다.
영업부의 오 언니가 퇴근하는 길에 관리과에 들렀다. 언니가 일부러 나를 찾아오는 일은 드물었다. 같이 입사했지만 언니와 나는 회사에서도 다른 대접을 받고 있었다. 언니는 대학 출신이라고 깨끗한 사무실이 있는 이층으로 올라갔고, 나는 제품들이 잔뜩 쌓여 있는 창고의 한 칸을개조한 퀴퀴한 사무실에 처박혀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