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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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붉은 신호등 11-5
  • 김선옥
  • 승인 2023.01.21 08:48
  • 기사수정 2023-01-21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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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에 이어) 남편의 배반에 아들을 등한시했던 적이 있다. 아들이 남자라서 남편의 분신이라 여겨져 의도적으로 애정을 감추었고, 딸이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턱없는 욕심이지만 딸이라면 가슴에 응어리진 이야기를 허물없이 나누고, 상처를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 아쉬움에 서운했는데 지금 예전의 후회는 다 부질없다.

출근을 서두르는 아침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나요. 경채 일로 오늘 좀 만납시다. 나눌 말이 있어요. 사무실 앞으로여섯 시까지 나오도록 해요. 사무실 건너편 이층에 커피숍이 있어요. 거기서 만납시다."

그는 전화에서 여전히 단도직입적이고, 명령 투였다.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마음 탓인지, 아니면 세월이 흘러간 때문인지 그런 말투도 거슬리지 않았다.

아들에게 아무 일이 없었더라면 단호하게 거절하고, 그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눈감을 때까지 평생 그를 용서하지 않겠다고 작정했었다. 가끔씩 아들이 만나는 것을 알면서도 남편과 관계된 모든 것들을빛바랜 추억으로만 기억하고, 의식적으로 잊고 살았다. 웬만한 어려움에도 지금껏 도움을 청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위해서는 그럴 수 없다.

"알았어요. 수업 끝나고 갈게요."

경채의 일을 함께 상의할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그녀는 반갑다. 남편의 전화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녀는 다른 날보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했다.

“이 선생, 몸이 너무 쇠약해졌어요. 아직 아들 소식은 못들은 모양이군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별일이야 있겠어요?"

키가 작고 살이 통통해서 학생들 사이에 통돼지라고 별명이 붙은 교감이 직원 조회를 끝내고 나오는 그녀를 불러 세우고 말을 건넨다.

"감사합니다."

말과는 상반된 노여움이 속에서 울컥 솟구친다. 아들의 기사가 일간신문에 일제히 게재되던 날, 교감은 득달같이 그녀를 불러서 큰소리쳤다.

-이 선생. 아들 교육을 어떻게 시킨 거요? 아들도 제대로 교육 못한 사람이 어떻게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사표를 내요. 지금 당장.

그의 말대로 당장 그러고 싶었다. 그러나 교직에 대한 열망으로 아이들과의 이별을 상상하지 못한 그녀는 애써 굴욕을 참았다.

그때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인내한 스스로에게 감사한다. 티 없이 맑은 눈동자들을 보며 가르치는 동안 모든 것들을 잊을 수 있어 굴욕에 대한 충분한 보상이 되었다. 학생들은 또 다른 경채였다. 아들이 생각날 때, 그녀는 학생들의 눈빛에서 아들을 발견한다. 그들이 또 다른 경채라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집에 소란스럽게 몰려오던 아들의 친구들마저 발길이 멀어진 상태다.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착잡했다. 잘못 말하고 행동하면 불이익을 당하는 시대에 가까운 사람들마저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학교도 한바탕 술렁일 모양입니다."

옆자리의 정 선생이 수업을 끝내고 쉬는 시간에 그녀에게 나직한 음성으로 말했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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