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에 이어)결국 엉망으로 취해 귀가하던 미순이 아버지는 기차에 치어 즉사했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던 초겨울의 어느 날이었다. 기찻길에 누워 일부러 일어나지 않았다거나 달리는 차를 향해 정신없이 뛰어들더라는 말도 들렸다.
추측성 소문들이 무성했지만 밝혀지지 않은 죽음이었다. 사고 이후로 사람들은 미순네를 도마에 올려 이야기꽃을 피웠고, 세상을 하직한 사람에게도 호의적인 말은 없었다.
미순네 집은 난도질하기에 적당했다. 고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한 미순이 오빠는 사업한답시고 깝죽대다가 많지도 않은 전답을 팔아 홀랑 날렸다.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여자와 함께 야밤에 줄행랑을 놓았다.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다닌다고 말이 많던 아이 딸린 과부였다. 서울의 변두리 무허가촌에 둥지를 틀었다거나 단칸방에 기거하며 막노동으로 입에 풀칠한다는 뒷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이 씹어 대기에 충분한 요소들을 두루 갖춘 집안이었지만 미순이는 뒤숭숭한 속에서 흔들림 없이 성장하였다.
나와 주호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나란히 초등학교를 마치고 중학교에 진학했다. 부잣집 아들 주호는 도시로 나가 기차로 통학했다. 미순이와 나는 근처의 중학교에 다녔다. 나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았다. 글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숙제를 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귀가를 늦췄다. 일찍 집에 가고 싶지 않은 미순이도 곁에서 노닥거렸다. 빨리 돌아가야 좋을 일은 없었다. 해가 저물기를 기다려 되도록 늦게 하교했다. 주호도 기차에서 내리는 시각이어서 우리는 자주 함께 집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들키면 미순이는 어머니에게 배가 터지게 욕을 먹었다.
“학교 파하면 냉큼 올 것이지, 어디서 자빠졌다가 이제야 오는 거여? 일부러 해떨어지기 기다렸다가 오는 거지? 썩을 년”
집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미순이 어머니는 딸에게 째지게 눈을 흘겼다.
"배배 꼬인 니넨 심보 훤히 보인다. 죽은 애비나 산 새끼들이나 하나같이 오장을 쑤시는 엠병혈 종자들이지 이년아, 까질러 나갈 궁리 말고 냉큼 벗어부치고 퍼뜩 움직여. 공부가 대수여? 니깐 년이 공부는 혀서 뭐헐라고 싸게 부엌으로 와 이놈의 집구석 불을 확 싸질러 버리든지 해야지 징헌 놈의 시상."
그녀는 질펀하게 욕설을 퍼붓고 미순이의 책가방을 뺏어 소리 나게 마루에 던졌다.
“니들도 빨리 집에 가라. 쓸데없이 씨부렁대지 말고."
미순이 어머니는 우리에게도 곱지 않은 눈길을 던졌다. 독을 품은 뱀처럼 사납게 혀를 굴리는데도 미순이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대꾸도 못했다.
“빨리 가. 망할 놈의 여편네가 또 욕설을 퍼붓기 전에."
미순이는 얼굴만 붉히며 식식대다가 부엌으로 사라진 어머니의 등 뒤에서 낮게 욕설을 뱉으며 우리를 재촉했다. 조금만 굼뜨게 행동하면 사납게 날뛰는 성깔을 알기에 미순이는 버티지 않고, 명령을 따랐다. 혀를 날름거리던 미순이가 부엌으로 들어가면 나는 주호와 안쓰러운 눈길을 교환했다. 아무리 심하게 득달을 당해도 집에서 벗어나면 미순이는 자주 고삐가 풀렸다.
"저들은 내 친부모가 아닌 게 틀림없어."
그녀는 책에 파묻힌 내 귓가에 소곤거리며 자신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했다. 꾸며서 만든 상상 속에서만 가능한 인물들이었다. 욕설을 퍼붓지 않는 어머니와 술에 취해 밤마다 소리치지 않는 아버지를 원했던 미순이의 간절히 마음을 나는 이해했다.
"내가 닮았니? 전혀 안 닮았잖아."
미순이는 강조했지만 반짝이는 눈을 보면 그녀는 죽은 아버지를 영락없이 빼닮았다. 그래도 사실을 말하지 못했다. 미순이를 출산하고 산후통으로 심하게 고생해서 밑으로 동생을 볼 수 없었다는 말도 차마 꺼낼 수 없었다. 멋진 부모를 기대하는 철석같은 믿음에 찬물을 끼얹을 수 없었으므로 내가 아는 사실을 목 안으로 삼켰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토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