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십 년 전 미순이 어머니는 오늘 미역국을 먹었다. 돌아보면 까마득한 시간이고 빼곡한 세월이건만 계산이 너무 빠르게 끝나니 허망하기 이를 데 없다. 잠든 사이에 누군가 벽돌을 쌓듯 나이의 조각을 차곡차곡 쌓아 놓은 것처럼 묵직한 삶의 무게가 사뭇 시리게 가슴을 짓누른다.
젊음을 잃는 게 두렵다고 말했을 때 미순이는 가볍게 웃었다. 때가 되면 당연히 늙고, 그게 자연의 법칙이니 너무 안달하지 말라고 내게 충고도 했다.
편안한 마음으로 숫자를 바라볼 것 같던 그녀는 이제 이곳에 없다. 친구를 잃은 나는 혼자 남아 버젓이 사십 고개에 이르렀다. 뒤늦게야 말의 행간에 숨겨진 뜻을 깨닫고 가슴을 친다. 그녀의 눈 흘김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오늘, 그녀가 몹시 보고 싶다.
거울을 본다. 주름이 숨겨진 얼굴은 뻔뻔하다. 팽팽함은 가셨지만 사람들은 나이를 곧이 듣지 않는다. 실제보다 젊게 보인다고 젊은 것은 아니다.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의 날이 적다는 사실을 생각하며 겉모습에 좋아하지 못하는 것은 시간이 정직하기 때문이다. 흘러간 인생을 되찾을 수 없다. 당당하게 살겠다고 큰소리치던 기도 한풀 꺾이고 젊음의 특권도 이미 사라졌다.
이렇게 죽음에 한 발 가까워진 나이는 매사가 심각하게 의식된다.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다가 자주 눈물을 흘리는 게 그 증거다. 서러움이 급격해지면 솔직히 겁이 난다. 정신보다 육체가 먼저 세월을 증명하는 일이 두려워진다는 뜻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이 다정한 친구처럼 어깨에 손을 얹고, 절망이 슬며시 손을 내민다. 끔찍하고 무섭다. 그 시기에 당도하면 외로움과 허무가 하수구에 고인 물처럼 썩어서 나를 부패시킬 것만 같다. 그런 감정들을 극복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이제 내리막길을 달리기 위해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회전날개처럼 돌아가던 일상에서 모처럼 휴가를 얻었다. 상처를 다스리거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상담소의 문을 두드리는 목소리에서 하루만이라도 해방되고 싶었다. 정돈되지 않은 문제들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휴식이 정말 필요하다.
태어날 때 사람들은 맞추어야 할 인생의 퍼즐을 받는다. 살아가면서 하나씩 꿰어 맞추는 조각들을 이제야 나도 점검하려 한다. 남은 삶을 엉망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과거의 기억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다. 상처가 되는 지난 시간을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모처럼 나를 깊게 들여다볼 생각이다. (계속)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