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셋, 중미에 던져지다 ③ ] 파나마에서 바다를 즐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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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셋, 중미에 던져지다 ③ ] 파나마에서 바다를 즐기는 법
  • Young(필명)
  • 승인 2025.10.11 06:25
  • 기사수정 2025-11-27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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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oga Island 당일치기

파나마에 온 지도 벌써 두 달이 지났다.

처음 해보는 회사 생활과 삼시 세끼 챙겨 먹는 일,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환경에 적응하느라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했다. 주말이면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침대에만 붙어 있는 나였다.

언젠가 이 시간을 그리워할 걸 알면서도 무기력하게 흘려보내던 어느 금요일 저녁, 러닝 후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봤다. ‘벌써 내일 주말이네, 내일은 또 뭐하지..’ 생각하다가, 이렇게 가까이에 바다가 있는데 집에만 있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내가 살고 있는 파나마시티는 바다와 맞닿아 있지만 시내에서 수영할 만한 해변은 찾기 힘들다는 점이었다. 눈 앞의 바다는 탁하고, 주로 항구로 쓰이는 듯했다. 바다수영을 하려면 차로 두세 시간은 달려 태평양이나 카리브해 연안 도시로 가야 한다. 그때, 동료들이 자주 추천하던 곳이 떠올랐다.

이름이 가물가물했는데, 아! 바로 여기. 꽃의 섬이라고 불리는, 타보가 섬(Taboga Island). 그 자리에서 바로 다음 날 페리를 예약했다.

시내에서 볼 수 있는 바다 풍경/Young
시내에서 볼 수 있는 바다 풍경/Young

타보가행 페리 티켓은 타보가 익스프레스(Taboga Express) 홈페이지에서 예매할 수 있다. 외국인 왕복 요금은 24달러. 가장 빠른 배는 아침 8시에 출발하고, 돌아오는 마지막배는 주말 기준 오후 5시30분이다.

내가 간 날은 늦게 예약한 탓에 오전 9시30분 출발, 오후 2시30분 귀환 티켓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은 단 하나, 바다수영. 네 시간도 충분하다.

다음 날 아침, 선착장 아마도르 코즈웨이(Amador Causeway)는 이미 사람들로 가득했다. 들뜬 표정들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게 내가 놓치고 있던 거였구나’ 싶었다. 

전날 예매한 내역으로 실물 티켓을 수령해야 했는데, 스페인어 까막눈인 나로선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을 따라가다, 한 여성에게 티켓 줄이 맞는지 물어보니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팔목에 티켓을 걸고는 야외로 나가 벤치에 앉았다. 사람들 손에 들린 아이스박스, 덩달아 함께 신난 반려견, 커다란 블루투스 스피커. 그들의 모습은 오늘 하루가 특별할 것임을 예고하는 듯했다.

“에스타 리브레 에스테 아시에엔또?(Está libre este asiento?: 이 자리 비었나요?)”

고개를 드니, 아까 줄에서 마주쳤던 바로 그 여성이다. 유일하게 외울 수 있는 스페인어 문장 “스페인어를 못해요. 죄송합니다.”를 내뱉자, 그녀는 번역기를 켜 내 옆 빈자리에 짐을 잠시 놓아도 되냐고 물었다. 그 한 문장으로, 오늘 하루 우리는 함께 하게 되었다.

Z는 파나마 출신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나중에야 그녀가 꽤 많은 팔로워를 가진 인플루언서라는 걸 알았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향한 호기심 어린 눈빛이 내 경계심을 풀어주었다. Z와 그녀의 여동생 K, 그리고 나. 뜨거운 햇살 아래 우리는 굳이 배의 야외 좌석을 택했다. 하늘은 맑고, 바다는 잔잔했다.

섬 도착 직후 입도세 내는 곳/사진=Young
섬 도착 직후 입도세 내는 곳/사진=Young

선착장에서 타보가 섬까지는 약 40분. 도착하면 간단한 짐 검사를 거친 뒤 입도세 1달러를 낸다. 현금만 받으니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기념품 가게와 식당이 줄지어 있는 좁은 골목을 지나 5분쯤 걸었을까, 드디어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완벽하게 맑거나 이국적인 바다는 아니었지만, 자유로운 풍경과 물속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만으로 충분히 아름다웠다.

해변가에 들어서자 상인들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파라솔과 선베드 대여료는 각각 10달러, 6달러. 시간 제한이 없는 점을 감안하면 괜찮은 가격이다. Z와 K가 챙겨온 파라솔 덕분에 선베드만 하나 빌려 자리를 잡았다.

얼른 겉옷을 벗어 던지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잔잔한 파도가 우리를 상냥하게 맞아준다. 이리저리 수영을 하고, 둥둥 떠다니며 하늘을 바라보고, 서로 물을 튀기며 웃었다. 불과 한 시간 전 처음 만난 사람들이 이렇게 편안하다니, 참 이상한 일이었다.

아침도 거른 채 수영을 한 탓에 배가 고파진 우리는 각자 가져온 간단한 음식들을 나눴다. 내 치즈빵과 코코넛 과자, 자매의 삶은 계란과 토스트는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했다.

나는 스페인어 왕초보에, 자매는 영어를 전혀 못했기에 번역기에 의지한 채 시간을 보내야 했다. 깊은 대화도, 정확한 의사소통이 되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이 그렇게 즐거웠던 건 왜였을까?  

태양 아래 누워 몸을 태우고, 라틴 음악에 맞춰 리듬을 타기도 했다. 내 오래된 디지털카메라로 서로를 담다 보니, 어느새 돌아갈 시간. 우연히도 우리는 같은 시간대의 티켓을 예매해, 돌아오는 길까지 함께했다.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젖은 몸을 말리다 보니 금세 선착장에 도착했다. 연락처를 주고받고, 포옹과 함께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헤어졌다.

Taboga Island 해변과 자매의 뒷모습/사진=Young
Taboga Island 해변과 자매의 뒷모습/사진=Young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니, 오랜만에 진짜 ‘휴식’을 한 기분이었다. 파나마에 온 지 두 달, 어느새 회사와 집만 오가는 익숙한 리듬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익숙함 속에만 머물다 보면 소중한 것들을 놓치기 쉬운 법이다. 잠깐의 바닷물, 우연한 만남, 그게 내 일상을 다시 흔들어 깨워주었다.

결국 내가 원하던 건 단순히 수영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파나마에 온 이유, 오기 전의 다짐을 다시 떠올리게 된 하루였다.

편안한 일상에서, 한 발짝 더 바깥으로 걸어 나가 보는 것. 그 안에는 예기치 못한 경험과 깨달음이 기다리고 있다.

삶은 결국, 이렇게 갑작스럽고도 작은 사건들 덕분에 더 의미 있어지는 게 아닐까. 오늘의 바다와 웃음을 오래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의 기분만은 분명히 남아 나를 앞으로도 움직이게 할 것이다.

페리에서 본 파나마 국기/사진=Young
페리에서 본 파나마 국기/사진=Young
Taboga Island 선착장/사진=Young
Taboga Island 선착장/사진=Young
기념품 상점들/사진=Young
기념품 상점들/사진=Young
Taboga Island 풍경/사진=Young
Taboga Island 풍경/사진=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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