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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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 #그의 아내 9-9
  • 김선옥
  • 승인 2022.09.02 05:39
  • 기사수정 2022-10-05 0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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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에 이어) 억울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한번은 죽게 될 목숨이니까. 인간은 때가 되면 가야 한다. 시기가 조금 앞당겨졌다고 무슨 상관이랴. 그녀라도 곁에있을 때 갈 수 있어서 차라리 잘된 일이다. 그녀는 이런 내 생각을 알까.

"너처럼 윤시영이도 오빠에 대해서 잘 몰라. 내가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거든. 나도 어떤 게 진실인지 헷갈릴 때가 있어서 겁이 났기도 했으니까. 오빠는 지금도 정신병원에 있어. 실의에 빠져 지내다가 폐인이된 거야. 네 천한 피가 오빠를 망쳤어. 올케에게 깡그리 빼앗기고 거덜 난오빠의 사업을 내가 물려받아서 이만큼 키운 거라고, 윤시영이도 인정하는 뛰어난 능력이지."

내 심장은 멈추기 직전이다. 하지만 청각은 또렷하다. 사람은 죽어도 청각이 제일 늦게까지 남아 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게 기억난다. 그녀의 말은 모두 맞다. 나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인다. 대단하다 이영숙, 말하고 싶은데 말이 나오지 않는다.

"너를 찾고 보니 환장하겠더라고. 세상에, 윤시영의 그 잘난 첫사랑이었으니, 아직도 그 바보는 네가 꽃뱀인 거 몰라. 너 같은 버러지를 천사로 알고 있다는 거지. 정말 딱하고 멍청한 인간이야. 몰라도 그렇게 모를까."

나는 그녀가 나를 죽이기 위해 철저하게 계획했다는 사실을 깨닫지만 너무 늦다. 나는 그녀의 성품을 과대평가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커피에 약을 탔어. 심장을 멈추게 하는 성분이지. 나는 커피 잔을 씻고, 다시 새 커피를 부을 거야. 네 지문을 묻힌 다음 슈퍼에 물건을 사러가야 해. 내가 짠 콘티거든."

내가 먹다가 놓아 둔 커피를 가져다 그녀는 싱크대에 쏟는다. 그리고 깨끗이 씻은 잔에 새 커피를 반쯤 따른다. 그녀는 움켜쥔 내 손을 억지로 펴고 손잡이를 들게 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식탁 위에 컵을 얌전히 다시 올려놓은 그녀는 이제 다 끝났다는 표정이다.

"슈퍼에서 돌아온 나는 네 시체를 발견하게 되는 거야. 깜짝 놀라서 나는 119에 전화를 걸어서 다급하게 상황을 설명하지. 너는 내가 없는 사이에 죽어 있어. 너는 그냥 심장 발작을 일으킨 거야. 나는 네 심장 발작이 있었다는 것도 몰라. 부검을 기대할 생각은 하지 마. 그건 부검해도 알 수 없는 성분이거든. 타살 흔적이 전혀 없다는 거, 미리 알고 실행한 거니까. 내가 이 일을 위해서 얼마나 치밀하게 진행시켰는지 알까 모르겠군. 어때, 기막히지 않아? 나도 내가 왜 이렇게 머리가 잘 돌아가는지 모르겠어."

그녀는 소설을 읽는 것처럼 차분하게 줄거리를 이야기한다. 잘 짜여진 각본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그녀는 빈틈을 없애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을 것이다. 인터넷을 뒤지고, 시간을 점검하고, 표정과 말투를 연습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윤시영에게도 전화를 걸어. 그가 돌아오면 나는 울어서 퉁퉁부은 눈으로 그의 품에 안길 거야. 그에게는 어이없고 놀란 표정만 보이는 거지. 나는 그에게 네가 찾아왔다고 말해. 찾아온 이유? 물론 돈이지."

그녀는 음흉하게 웃는다. 미저리의 공포가 생각나지만 내게 죽음의 공포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면 그녀는 어떤 표정일까. 화들짝 놀랄까. 모르겠다. 죽고 싶었던 시간들이 내겐 너무 많았다. 삶을 연장했지만 유혹은 버리지 못했다. 그녀로 인해 미련 없이 죽음의 예식을 치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헛된 일에 매달렸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 주지 못한 것이 유감이다. 그녀도 나를 잘못 평가했다. 하잘것없는 나를 처치하느라고 죄를 짓게 된 그녀가 불쌍하다. 벌을 감당하기 위해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 그녀가 참 안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아, 윤시영의 걱정은 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죽으면 꽃뱀의 전적이 모두 드러날 것이고, 그 바보는 기절할 정도로 놀랄 테니까. 나는 네가 얼마나 많은 돈을 갈취해 갔는지 밝힐 셈이거든. 너를 떼어 내는 미끼로 돈이 흘러간 것을 그가 알도록 하는 거지. 그 인간은 믿었던 첫사랑이 내게 손 내민 사실은 까마득하게 몰랐다는 거지. 너의 죽음으로 모조리 알게 되어 놀라기야 하겠지만 심각하게 충격 받지는 않을 거야. 어쩌면 크게 실망해서 네 시체에 침을 뱉을지도 몰라. 너무 속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녀의 말소리가 점점 희미하게 들린다. 윙윙거리는 모기 소리처럼 작아진다. 사물들이 점차 흐릿하다. 그녀의 얼굴인지 윤시영의 얼굴인지도 구별이 힘들다.

“그렇다고 내가 모든 것들을 용서했다는 말은 아니야. 빠른 시일에 그 멍청이도 너처럼 죽음을 맞게 될 테니까. 잇달아 같은 방법을 쓸 수는 없지. 들통이 나면 내가 고달프지 않겠어? 그래서 적당한 방법을 지금 모색하는 중이야. 어쩌나 크게 기대해도 좋을 엄청난 광경을 볼 수도 없게 되었으니, 한줌의 가루로 바람에 흔적 없이 사라질 시간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네. 시영이 죽으면 만나서 서로 사이좋게 지내. 거기까지 따라가서 훼방을 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으니까. 난 그렇게 속 좁은 여자는 아니거든."

그녀가 문을 열고 나간다. 몸을 움직이고 싶지만 나는 이제 그럴 수 없다. (끝)

김선옥 작가의 단편소설은 매주 금요일에 이어집니다.

 

김선옥 작가는?

김선옥 작가
김선옥 작가

ㆍ군산 출생

ㆍ개정간호대학(현 군산간호대학교) 졸업

ㆍ1981/1987/1991년 간호문학상(단편소설)

ㆍ1991년 청구문학상(단편소설)

ㆍ2000년 전주일보 신춘문예(단편소설) 당선

ㆍ2018년 채만식 문학상 운영위원

ㆍ現 한국소설가협회-전북소설가협회-전북문인협회-소설문학 회원

ㆍ現 논산 행복한 요양병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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