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대야초· 대야남초- 옥구중- 한들고’체제로 이뤄져
이길여 가천대총장‧ 최재승 전 의원‧ 강임준 시장 등 배출
대야는 한때 지역의 읍면 중에서 인구와 규모가 큰 ‘웅면(雄面)’으로 위상을 떨쳐왔다.
대야면이 그 위상을 누리게 된 시기는 일제강점기 이후지만 농업의 영향력이 절대적이었던 시절엔 그야말로 경제적인 측면에선 쌀농사의 힘은 대단했다. 그 절정기는 1980년대 중반 이쪽저쪽이었을 것이다.
대야면은 일제강점기 들어 철도와 전군도로 등이 들어섰고 김제 청하와 연결되는 옛 새챙이다리의 등장 등 4통8달의 교통중심지로 거듭나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지역민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지역발전의 모태가 되는 학교 건립에 앞장서왔다.
그런 열망은 다른 지역에서 보기드물게 ‘3개 초등학교· 2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체제’를 만들어 지역발전을 도모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농현상과 도시화 등으로 대야면에는 2개 초등학교· 1개 중학교· 1개 고등학교체제로 변해 과거와 다르게 위축된 상황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군산의 두 번째 특수학교(가칭 군산 지음학교)가 2027년 대야초 광산분교에 들어설 예정이다.
# 3개의 초등학교… 대야초· 대야남초· 광산초로 출발
ㆍ장자(長子)학교 대야초와 옛 광산분교(옛 광산초)
대야지역에서 처음 문을 연 학교는 대야초등학교다.
‘4년제 보통학교’로 시작한 대야초의 개교는 1921년 7월1일.
1세기를 훌쩍 뛰어넘은 대야초는 오랜 역사와 인재의 산실로 잘 알려져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다른 지역과 달리 독보적이라 할 만큼 수많은 인물들을 배출한 전통명문학교이다.
제99회 졸업생 22명을 배출, 동문 약 1만7,000명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대야면 접산리 소재 옛 광산초등학교는 대야초등학교 광산분교로 격하됐다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 학교 출발은 1934년 4월 대야공립보통학교 부설 광산간이학교로 시작됐고 10년 뒤에 광산공립초등학교- 광산초등학교(96년 3월)- 대야초 광산분교(1999년 3월 1일) 등으로 변화되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마저 2023년 2월에는 신입생이 없어 결국 폐교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자리에는 군산의 두 번째 특수학교가 2027년 문을 열 예정이다.
전북특별자치도교육청(교육감 서거석)은 옛 대야초등학교 광산분교 부지 1만7,449㎡에 총사업비 402억6,800만원을 들여 특수학교인 군산지음학교(가칭)를 설립키로 했다.
오는 2027년 3월 개교를 목표로 하는 이 학교는 유치원 1학급, 초등학교 6학급, 중학교 6학급, 고등학교 6학급, 전공과 2학급 등 총 21학급 규모로 계획돼 있다.
도교육청이 제2 군산특수학교 설립에 나선 이유는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급증하면서 이 지역 유일한 특수학교인 군산명화학교가 과대· 과밀 학교로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ㆍ대야남초
대야남초등학교는 1963년 4월30일 설립돼 같은 해 9월 복교 분교장 2개 학급으로 시작됐고 2년 후 정식으로 문을 열었다. 1966년 4월 대야남국민학교란 이름으로 본격 개교했다가 1996년 3월 교명을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24년 1월 제56회 졸업생 등 모두 1,500여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 두 개의 중학교… 옥구중과 진성여중
조그만 면지역에 두 개의 중학교가 있는 곳은 흔치 않는 경우다.
ㆍ옥구중학교
해방 후 민족교육이 시급하던 때 대야면 지경리에 대야의 주요 인사들이 나서 지역중학교 설립운동에 뜻을 모았다.
옥구중 설립기성회가 1946년 1월 조직도 다음해 6월 석화리에 가교사 준공식을 열고 1948년 1월 옥구초급중학교란 이름으로 인가를 받았다.
초대 교장은 홍종국이었고 1948년 3월 133명의 신입생과 함께 첫 입학식을 개최했다.
학교 모습이 제대로 갖춰진 것은 고 이종록 선생이 1949년 9월 부임했고 다음해 1월 현교사로 이전, 1950년 3월 역사적인 개교식을 가졌다.
지금까지 75회 졸업식과 함께 약 1만 6,000명의 동문이 배출된 명문농촌중학교로 발돋움했다.
처음에는 남녀공학이었다가 1973년 3월 1일 진성여자중학교의 개교로 남학생과 여학생이 분리되는 과정을 거쳤다. 후에 1979년 3월 1일 중·고로 분리됐고, 1999년 9월 1일 진성여중과 통합돼 옥구중으로 흡수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ㆍ진성여중학교
대야면 산월리 소재했던 진성여중은 1972년 10월 학교법인 진성학원 설립인가를 받아 설립자 이봉귀씨(작고)가 초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다음해 12학급 규모의 설립인가를 얻어 1973년 2월 4학급으로 개교했다. 초대교장은 황진규였다.
1975년 3월 12학급체제로 출발했지만 1999년 9월1일자로 학생수 수급이 안돼 폐교, 옥구중과 합병했다. 폐교 후 이곳은 학교부지에서 제외돼 드론학교가 운영 중이다.
한편 이 학교를 세운 이봉귀씨는 지금 작고했지만 과거 경찰관으로 근무하다 군산 영동에서 양복점을 운영하며 일가를 이룬 육영사업가다.
# 지역 유일의 고교 ‘한들고’ 변천사… 옥구농고- 옥구종고(옥구고)- 군산남고 등 거쳐
1946년 1월에 옥구중 설립기성회를 조직, 1947년 6월에 대야면 석화리에 가교사(假校舍)를 준공하여 4년제 옥구중학교로 개교했다.
이듬해 1월 정식 인가되어 133명의 학생이 입학한 후, 1950년 현재의 위치로 교사를 신축, 이전했다.
1951년 8월 제1회 졸업생 44명을 배출하였으며, 1951년에 여자부 3학급을 인가받아 남녀공학으로 출발한 뒤 1952년 학제변경(고교와 중학교 체제 분리)에 따라 옥구중과 옥구농업고로 분리, 개편되어 농과 3학급으로 인가됐다.
1953년 축산과 3학급을 증설하였다가 1959년 다시 축산과를 폐지하여 농과만 남게 된 것.
후에 농촌인구의 격감과 농업기피현상 등으로 농업계 고등학교 지원자가 줄어들자, 1973년 보통과와 농업과를 둔 옥구종합고등학교로 개편, 보통과 6학급과 농업과 3학급을 편성했다.
1974년에는 학년당 보통과 2학급, 농업과 1학급, 농업가정과 1학급으로 총 12학급이 됐다가 1984년 8월 인문계로 개편되어 옥구고등학교로, 1997년 3월엔 군산남고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했다. 2002년 1월 현위치에 교사를 신축하여 이전했다.
2018년 3월 한들고등학교란 이름으로 교명을 바꾼 뒤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