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을 걷다 #95] 백릉길(로)에서 만난 경암동 이야기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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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을 걷다 #95] 백릉길(로)에서 만난 경암동 이야기들(2)
  • 정영욱 기자
  • 승인 2023.04.06 11:08
  • 기사수정 2023-04-06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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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포동)’+ ‘(구)암(동)… 경암동주민센터신축 2024년 6월 준공
1983년 설립된 ‘군산원조 운전학원’ 인근의 K운전학원 존재
구암초… 축구부 창단 통해 군산축구의 발원지 위상 대단
경암동 주민센터로 가는 정겨운 골목길. / 사진=투데이군산
경암동 주민센터로 가는 정겨운 골목길. / 사진=투데이군산

진포로와 백릉로, 구암3.1로 등에 둘러싸인 곳이 경암동.

오늘날의 경암동은 본래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였다. 해방 후 행정구역 개편으로 구암동이란 범권역에 포함되었지만 1954년 독립, 새로 출발했다. 인근에 조촌동과 구암동이 위치해 있다.

이곳의 명칭은 구암동 일부와 경포동을 포함한 것인데 ‘경(포동)’+ ‘(구)암(동)’에서 비롯됐을 것은 분명하다.

이곳은 군산의 도심권을 가로지는 경포천을 끼고 있고 일제강점기에는 경마장이 있었던 한적한 동네였지만 주변이 발전하면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과거엔 1970년대 합판공장과 조선이기 등도 있었고 최근엔 이마트와 아파트단지, 일반주택단지 등이 들어서면서 핵심권역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1984년 건축된 경암동주민센터는 그동안 주변의 변화에도 낙후의 상징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신축예정인 ‘경암동 복합커뮤니티 센터’는 국비 50억, 도비 8억 포함 총사업비 108억원이 투입돼 구암초교 유휴부지와 현 경암동 주민센터 부지 내에 3층 규모로 건립된다.

건축기간은 2023년 1월부터 2024년 6월까지다.

이곳에는 주민센터를 비롯해 지역민과 학생들이 공동으로 활용·체험할 수 있는 교육·문화·복지 관련 시설이 들어선다.

옛 세풍제지로 들어가는 철길에 있는 ‘철길마을’ 등이 남아 있어 '핫'한 관광지로 입지를 굳히고 있다. 물론 과거엔 낙후와 관련이 되어 있었지만 그 잔영이 오히려 관광자원으로 변하는 것은 일종의 아이러니일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K운전학원의 소재지는 조촌동에 있었는데 아마 경암동과 가까운 곳인데다 군산에서 가장 오래된 자동차운전학원이어서 숱한 에피소드를 안고 있다.

오래 전 A농조조합장의 부인이 시작했다는 얘기는 있는데 그 시기가 1983년이었고 2004년6월 수송동으로 확장이전했단다.

당시엔 운전면허시험을 보려면 해당 지역에 주소(주민등록)를 둬야 했는데 당시에 운전면허학원이 없었던 서천권 사람들은 편법으로 군산의 친지나 학원과 잘 통하는 주민의 주소지로 옮겨야 했다.

이런 시기에 경암동의 한 통장 댁에 한꺼번에 수십명의 서천사람들이 동일세대원으로 들어오는 사례도 있었다는 것. 당시에는 이곳만의 촌극은 아니었을터.

이런 얘기말고도 경암동에는 전국적인 스토리텔링 주제들로 가득하다. 그 핵심 키워드가 ‘축구’와 구암초등학교.

또 다른 말을 만들어보자면 전국적인 맛집인 중동호떡은 경암동의 서래로에 있는 유명 호떡집이다. 물론 이곳에 대해선 이미 오래전 ‘군산을 걷다(# 44)’에서 다뤘다.

# 군산축구의 발원지 역할한 ‘구암초’

구암초등학교 전경. / 사진=투데이군산
구암초등학교 전경. / 사진=투데이군산

구암초등학교와 관련되 내용 중 축구 못지 않게 흥미를 담은 것이 학교 역사의 이야기일 것이다. 조심스럽게 이야기 보따리를 펼쳐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축구와 관련된 구암초의 5형제 축구명문가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 편으로 기약하고자 한다.

구암초의 개교는 1945년 5월5일로 일제강점기다. 이후 77회 졸업 역사와 1만8,970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학교다.

하지만 다양한 인터넷 자료 등을 취합해보면 ‘안락소학교’의 후신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는 학교의 공식 연혁에는 들어 있지 않지만 어떤 인연을 갖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학교의 시작이 ‘구암교회당’이란 단서가 있어 더욱 그렇다.

우선 학교 공식적인 자료에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알락소학교’에 대한 내용을 다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 하다.

*알락소학교(또는 안락(소)학교)

갑작스럽게 ‘소학교(?)’라니, 아니 ‘알락소학교’는 무슨 말인지 궁금해할 것이다.

종합적으로 요약된 내용으로 ‘소학교’는 1895년에 설치된 근대적 초등교육기관.

구한말 신학제의 제정에 따라 학부(學部:學務衙門)는 1895년 7월 ‘소학교령’을 공포하여 초등교육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같은 해 8월에는 학부령 제3호로 소학교규칙대강을 공포함으로써 소학교령에 따른 소학교 교육의 큰 줄기를 제시하는 한편, 1896년 2월 학부령 제1호로 보조공립소학교규칙을 공포해 시작된 것이다.

소학교령에 나타난 교육 목적은 아동의 신체발달에 비추어 국민교육의 기초와 생활에 필요한 보통 지식 및 기능을 갖추게 하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소학교의 편제는 3년제의 심상과(尋常科)와 2, 3년제의 고등과로 나누어 실제 수업연한은 5, 6년으로 되어 있었다.

이를 종합적으로 볼 때 소학교는 1906년 보통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38년 다시 소학교로 명칭이 바뀌어 1941년 초등학교를 거쳐 1996년 초등학교로 바뀐 것.

‘알락소학교’의 ‘안알’이란 말의 유래는 의료 선교사 알렉산더 존 A. 알렉산더(1876~ 1929)에서 비롯됐단다.

이 학교는 전킨 선교사가 서재에서 10여명의 소년소녀들을 모아 놓고 한글을 가르치던 것에서 출발했다. 이 학교외에도 영명학교(제일고교), 멜볼딘여학교(영광여중고) 등도 이런 흐름에서 비롯됐다.

알락소학교의 경우 정식 학교의 형태를 갖추기보단 민가에서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작하여 후에 정식학교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알렉선더 선교사는 1902년 11월 군산으로 파송됐지만 부임 2개월도 채 되지 않아 부친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귀국한다.

구암초의 전신격인 알락소학교란 이름을 작명한 것으로 알려진 오긍선 근대서양의학의 선구자. / 사진=구암교회 선교센터 제공
구암초의 전신격인 알락소학교란 이름을 작명한 것으로 알려진 오긍선 근대서양의학의 선구자. / 사진=구암교회 선교센터 제공

알렉선더 선교사는 그때 어학교사 겸 조사였던 오긍선(1878~ 1963: 우리나라 피부의학분야 선구자)을 데려간다. 그는 알렉산더의 적극적인 지원과 도움으로 켄터키주 센추럴 대학과 루이빌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고 1907년에 미국 남장로회 선교사 자격으로 귀국, 야소병원 원장을 역임한다. 귀국 후 그가 자신의 은인인 ‘알렉산더의 뜻을 기념’하여 세운 학교가 ‘알락소학교’다.

그는 1907년 센트럴대학 의학부를 졸업과 동시에 미국 의사면허를 취득하였는데, 서재필에 이어 두번째다. 서양의학 선구자 오긍선과 관련해서는 나중에 좀더 다루고자 한다.

알락소학교의 역사와 관련해서는 어떤 곳에선 1902년 설립됐다고도 하고, 다른 곳에선 오긍선이 귀국한 1907년 이후란 말들도 있다. 다만 이 학교가 처음부터 학교형태로 존재했을지 모르지만 정상적인 학교기능을 한 것은 후자가 논리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내용 등과 아울러져 구암초의 전신이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학교 출신으로 유명인사는 제헌의원이자 초대 체신부장관이었던 윤석구 선생(1892~ 1950: 서천 화양면 출신)과 제헌의원이었던 이요한 전 전북지사(1899~ 1988) 등이 있다.

한편 구암초등학교 외에도 인근에는 경포초등학교와 성가의원 등이 오랫동안 지역민들과 고락을 같이하고 있다.

1983년 10월 설립된 경포초등학교는 37회 7,958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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