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산군도 최서단에 위치한 말도.
제일 끝섬이라서 말도라 부른다고 한다.
장자도에서 오전 11시에 출발하는 여객선을 타고 방축도와 명도를 지나면 목적지인 말도에 도착한다.
말도에 막 도착할 때쯤이면 선착장부터 특이한 바위들이 눈에 들어온다.
떡처럼 생겼다하여 떡바위, 책처럼 생겨 책바위…
말도는 약 5억4,000만년 전부터 습곡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말도 습곡구조는 2009년 천연기념물 501호로 지정 됐다.
고군산군도를 지질공원으로 지정하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말도의 남동해안을 따라가면 대규모 지각운동으로 인해 지층이 큰 물결모양으로 구부러져 있는 곳을 만난다.
물결모양흔적(연흔), 비스듬한 층리(사층리) 같은 퇴적구조다.
군산도서지 말도편에 따르면 국내에서는 희귀한 지질구조로 평가받고 있단다.
습곡으로 휘어진 단층은 학술적, 교육적 가치도 뛰어나다.
뿐만 아니라 수려한 바다 경관과 어우려져 국민들의 관심을 끌기에도 충분한 곳이란다.
섬에 도착해 선착장을 중심으로 마을로 들어가는 길과 해변으로 갈수 있는 갈래길에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먼저 마을길을 선택해 걸어본다.
15가구 정도 모여사는 조그미한 섬마을.
아직까진 집집마다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
대개 뭍에서 지내다가 사리 때나 어업일이 있을 때에만 말도에 들어오기 때문인 것 같다.
주민들의 생활은 다른 섬과 마찬가지로 삼강망(광어,도다리,도미)과 해삼, 전복을 잡는다.
또 갯바위 낚시를 안내해주며 민박과 낚시배도 운영한다.
말도는 조선 중엽에 심판서라는 사람이 귀양해 오면서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유배가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가려니 며칠 바람이 불어 파도가 거세 배가 뜰수가 없게 됐다.
그렇게 며칠을 기다렸다.
꿈에 신령이 나타났다.
"네게 있는 단도를 내게 바치고 나가거라"
영신당에 단도를 바쳤다.
그러니 바람이 잦아들면서 귀양살이를 마치고 무사히 떠날 수 있었다고 한다.
그후 심판서가 별세하고나서 영신당을 건립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매년 11월이면 마을의 안녕을 위한 제를 수백년 지내왔다.
하지만 무속신앙 타파라는 구호 아래 40여전부터 제를 지내지 않고 있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또 하나의 전통문화가 사라진 것이다.
마을 교회를 지나 아담한 산길을 따라 북쪽으로 향했다.
바닷가에 내려가보니 여기도 해양쓰레기로 넘쳐났다.
올 한해도 전라북도에서 해양쓰레기 정화사업에 50억원을 투자한단다.
내 생각엔 이 사업 예산을 더 들여야한다.
섬 해양쓰레기 문제는 우리가 알고있는 것보다더 심각하기 때문이다.
말도는 작지만 섬의 위치에 따라 바위와 나무들은 물론 바다의 색깔도 다르다.
지루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다.
서쪽으로 발을 돌려 야산을 넘어가면 말도의 명물인 등대가 보인다.
이곳의 등대는 우리나라 마지막 유인등대다.
지금은 무인등대다.
마을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2019년
8윌1일부터 무인등대로 전환이 되었다고 한다.
등대는 1909년 일제 강점기때 군산항에서 쌀을 실은 배들의 항로를 위해 만들어졌다.
처음으로 불을 밝힌 인천 팔미도 등대에 비해 5년 늦게 세워졌다.
112년의 쌓인 경륜속에 지금까지도 늠름하게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그래서 어민들의 항로는 안전하기만 하다.
하지만 투박한 등대 하단의 모습은 늘 아쉽다.
등대를 내려오면 애국가에 나오는 천년송의 소나무가 있다.
현재 이곳엔 방파제를 만들었다.
방파제가 연결된 덕에 무인도까지 걸어가서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예전에는 항구안쪽에 바지락이 많이 나와 이곳의 주 수입원이기도 했단다.
말도~명도~방축도 인도교가 완공이 되면 이곳에 쉼터인 '바람의 언덕'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시작과 도착점의 트레킹 코스이기에 힐링의 공간으로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섬이 크지 않기에 말도를 둘러보는 시간도 길지 않다.
말도는 아직 때가 묻지 않았다.
그래서 말도는 아름답고 소중한 곳이다.
앞으로 말도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겠지만 방향과 목적을 잘 설정해야 한다고 본다.
말도를 가슴에 묻고 장자도로 향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