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 실린 월나라 ‘西施’ 전설
국내외 교류의 공간 ‘금강’과 관련한 중국전설 등도 다수
나포는 남한의 3대 강인 금강을 끼고 있어 국내외 교류가 어느 지역보다 활발했던 곳이었다.
그런 연유와 깊은 관련이 있겠지만 중국· 일본 등과의 교류 및 접촉이 빈번했던 역사적 사실이나 다양한 전설들은 무궁무진하다.
그것도 국제적인 내용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는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물론 군산 금강엔 국제교류의 역사 등이 적지 않았다.
백제의 첫 불교전래자 마라난타와 관련된 사찰, 백제 멸망사와 고대 동북아의 한중일이 모두 참전한 백강전투, 송나라 사신 서긍의 이야기, 세계 최초 함포전쟁으로 기록된 진포대첩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여기에다 당나라 소정방과 관련된 백제의 패망에 얽힌 전설과 역사적인 사실들까지…
앞에서 언급한 대부분의 내용들을 다뤘거나 향후 지역 시리즈에 추가적으로 다뤄지겠지만.
이 중에 흥미롭지만 덜 알려진 중국의 4대 미인 ‘서시(西施)’와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이 지명과 얽힌 전설은 나포면 서포리의 옛 지명인 서시포(西施浦)를 비롯한 다른 지역의 ‘서시(西施)’의 지명 이야기를 담았다.
# 중국의 4대 미인 ‘서시’의 고향이 군산 나포(?)
실학자 이중환(1690~1756)은 그의 저서 ‘택리지’에서 중국 4대 미녀 중 한 명이 한반도 남부 출신이었다는 믿기 어려운 전설을 담아냈다.
“서해에서 금강을 거슬러 올라오면 서시포(西施浦· 군산시 나포면 서포리)라는 큰 마을이 펼쳐지는데 배가 머무는 곳이다. 충청도 강경의 황산촌과 더불어 금강에서 이름난 마을로 불린다. 서시포라는 이름은 옛날 중국 월나라의 미인인 서시가 이곳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졌다.”
실학자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 전주부의 한 구절이다.
택리지에 나온 서시포(西施浦)는 고려 시대에 조종포(朝宗浦)가 있던 곳이고, 조선시대에는 서포· 서호· 수해나루로도 불리는 금강수계의 주요 나루터였다.
서시포는 고려 시대 각 지방에서 거두어들인 세곡을 수도 개경으로 운송하기 위해 전국에 설치한 60개 포구(浦口) 가운데 하나인 일종의 조운이 있었던 곳이다.
또 오성산 자락과 금강하구가 만나는 이곳은 조선시대부터 군산과 강경 사이에 금강 수운을 이용한 여객과 화물을 운송하는 데 이용됐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는 금강호, 강경호, 행운호, 연봉호 등의 연락선이 경유하는 곳이었고 금강을 사이에 둔 군산시 나포면 서포와 충남 서천군 화양면 와초리 사이를 오가는 나루터였다.
기원전 춘추시대 중국의 서시(西施)는 중국 역사상 최초의 미녀 스파이로 전해진다. 그녀에게는 ‘침어(沈魚)’라는 수식어가 붙었는데, 이는 물고기가 강물에 비친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매혹돼 헤엄치기를 잊고 가라앉았다는 뜻이다.
서시는 중국의 4대 미인(서시, 왕소군, 초선, 양귀비) 가운데 한 명으로 절세미인으로 꼽혔다.
월나라 미인 서시는 전한 왕소군, 후한 초선, 당나라 양귀비와 함께 ‘중국 4대 미녀’로 꼽힌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서시는 춘추시대 말기 양쯔강 하류에 존재했던 오(吳)나라와 월(越)나라 두 나라의 전쟁사에 등장한다.
오나라에 패망한 월나라 왕 구천의 충신인 범려가 서시를 데려다가 와신상담(臥薪嘗膽) 고사의 주인공 오왕 부차에게 바친다. 부차가 그녀의 미색에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게 되자 마침내 범려는 오나라를 공격해 멸망시킨다.
서시는 그 후 부차에 대한 죄책감으로 강에 투신해 삶을 마감했다고. 서시의 미모가 한 나라의 흥망을 좌우한 것이다. 서시를 놓고 훗날 호사가들은 경국지색(傾國之色)이란 4자성어를 만들어냈다.
그러면 택리지의 기록대로 중국 고대사의 한 장면을 장식하고 있는 서시가 과연 한반도 남부 태생이었을까.
서시가 살던 기원전 5세기 한반도 남부 지역은 역사의 여명이 밝아오기 전의 상태였다. 북부와 요동, 요서 일대의 고조선 영향권에 있기는 했으나 당시에는 부족국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만일 한반도 출신이라면 어린 나이에 어떤 연유로 황해 맞은편 중국 양쯔강 일대까지 흘러 들어갔던 것일까.
황당함과 그럴듯한 이야기이어서 여전히 재미를 더해주지만 역사적인 사실과 동떨어진 일일 것은 분명하다.
택리지는 이중환이 전국을 답사하면서 각 지역의 인심과 풍속, 물화의 생산지 및 집산지 등을 낱낱이 파악해 1751년(영조 27) 쓴 지리서이다. 앞의 내용은 매일경제의 내용을 발췌했다.
# 또다른 서시와 얽힌 광주 광산구 서시마을과 서호 등
전국에는 또 다른 서시와 관련된 지명들이 존재하는데 광주광역시 광산문화원이 지난해 2월 광산구 관내 자연마을 이름의 유래와 어원을 밝힌 ‘마을 이름의 유래를 찾아서 1·2권’에도 일부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자에 따르면 광산구 동곡에는 서호마을이 있는데 원래는 중국 4대 미인의 이름을 딴 서시(西施)마을이었다고.
이는 평동천이 영산강에 합류하는 세 물줄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西)는 세(三)의 방언이고, 시(施)는 골짜기를 뜻하는 순우리말 ‘실’을 한자음을 빌어 표기한 것이라고 한다.
과거의 서시마을은 마을 앞에 큰 호수가 있어 여전히 서시와 깊은 관련이 있는 서호(西湖)마을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국 항저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서호(西湖) … 같은 지명만 800개
고대 중국 미인 서시(西施)의 이름을 따서 지은 항저우의 ‘서호(西湖)’도 서시와 관련이 있는 지명.
이곳은 중국 저장성 항저우시 서쪽에 위치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아름다운 인공호수이다. 이런 아름다운 호수 ‘서호’라는 이름은 서시의 미모를 빗대어 붙여졌단다.
중국에 서호란 동명(同名)의 호수가 800개에 달하고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항저우의 ‘서호’다.
2000년 전에는 지금의 서호가 첸탕강(钱塘江)의 일부였지만 진흙모래가 쌓여서 만들어진 담수호다.
전체 면적은 6.3㎢, 둘레는 15㎞, 동서 2.8㎞, 남북 3.3㎞이고, 평균수심은 1.5m, 최대 수심 2.8m의 규모로 알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