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은 1963년 가을 군산을 처음 다녀간 것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제5대 대통령 선거(10월 15일)와 제6대 국회의원 선거(11월 26일) 치러졌던 그해 7월, 민주당 재건에 참여해 원외 인사로는 파격적으로 대변인에 발탁되고 몇 달 후였다. 그때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전국구 비례대표제가 채택되고, 지역구는 여전히 소선구제로 유지되고 있었다.
구악(舊惡) 일소를 공약으로 내건 박정희 군부정권은 앞에서는 부정 축재 처벌법을 만들고, 뒤로는 재벌과 결탁하였다. 정치자금 받고 비리 및 탈세를 눈감아줬던 것. 결국 ‘4대 의혹사건(증권파동, 워커힐사건, 새나라자동차사건, 파친코사건 등)’이 터진다. 이 모두 중앙정보부가 공화당 조직에 필요한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저지른 신악(新惡)으로 법을 짓밟는 만행에 가까웠다.
# DJ “공명선거만이 우리나라 명예 회복하는 길”
김대중 대변인은 대통령 선거 투표일을 엿새 남겨놓은 10월 9일 오후 3시 군산국민학교 교정에서 박순천(朴順天), 송방용(宋邦鏞), 박한상(朴漢相) 씨 등과 함께 윤보선 후보 지원 유세를 펼친다. 재야 ‘공명선거투쟁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시국 강연회는 경찰의 집회 금지에도 불구하고 강행됐다. 당시 언론들은 2만여 명의 시민이 집회에 참여했다고 보도하였다.
호남지방에서 광주에 이어 두 번째로 개최된 군산 시국 강연회는 이날 오전 11시 집회를 시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전라북도 경찰국이 공명선거투쟁위원회는 등록단체가 아니기 때문에 집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불허한다. 이후 한동안 모임이 이루어지지 못할 것으로 시민에게 통지되었다. 이에 대해 주최 측은 당국의 돌연한 조처로 청중이 줄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한편, 민정당 군산시 지구당 양희철 선전부장은 시내 각 관공서는 오늘(9일)이 한글날 공휴일임에도 평상시같이 공무원들을 근무하도록 갑자기 조처한 것을 예로 들면서 음성적인 집회 방해라고 맹비난했다. 그의 말대로 시청 게시판에 총무과장 명의로 대통령 선거 끝날 때까지 전 직원은 공휴일에도 평일처럼 출근하라는 공고가 전날(8일) 날짜로 나붙어 있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 속에 치러진 군산 시국 강연회에서 민주당 박순천 총재는 이소동(李召東) 치안국장이 공명선거 투쟁위원회의 합법적인 활동을 방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점을 예로 들어 “투표일을 며칠 앞둔 이때 선거의 자유 분위기를 흐리게 하고 있다”라고 통렬히 비판하였다.
그해 10월 10일 자 <동아일보>는 “이곳(군산) 경찰은 ‘공명선거투쟁(公明選擧鬪爭) 위원회’ 합동시국강연회 연사 박순천, 김대중, 송방용, 박한상 씨 등을 대통령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공명선거투쟁위원회(공투위) 군산·옥구지구 대표 간사 박왕근(朴旺勤) 씨 및 전기 연사들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도 입건할 것”이라고 보도하였다.
윤보선 후보 지원을 위해 전국 주요 도시에서 계획했던 ‘공투위’의 시국 강연회는 경찰의 불허로 중지되는 등 선거 종반에 새로운 불씨가 된다. 서울에서는 9일 성신여고 마당에서 열기로 했던 강연회가 중지됐으며, 전주와 대전에서도 경찰이 집회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부산 역시 경찰이 강연회 광고를 위한 가두방송을 막는 바람에 중지됐다. 그러나 군산 강연회는 당국의 불허에도 굽히지 않고 강행했던 것. 아래는 당시 김대중 대변인의 강연 요지이다.
“군정하(軍政下)에서 실시 중인 이번 선거는 선거법(選擧法) 자체부터 원천적으로 부정(不正)과 암흑선거(暗黑選擧)를 이루고 있다. 부정투표(不正投票)와 부정개표(不正開票)를 안 하는 것이 공명선거(公明選擧)는 아니다. 지금 이미 부정선거가 감행되고 있다. 공화당(共和黨)은 야당(野黨)의 손과 발을 묶어놓고 행동의 자유(自由)를 주겠다고 되지 못한 생색을 쓰고 있다.
이소동 치안국장은 어제 광주에서 ‘공명선거투쟁위원회’를 중상 협박하는 언동을 농(弄)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군산, 전주, 이리 등 강연회가 개최될 예정이던 장소에서는 현지 경찰이 고의로 집회를 방해하고 있다. 중앙에 올라가서 이와 같은 경찰의 부당한 집회 방해를 공명선거투쟁위에 회부해서 대책을 세울 것이며 필요하다면 경찰을 집회 방해로 고발할 작정이다.”
김 대변인은 경황 중에도 10일 열린 이리(익산)와 충남 대전 강연회에 참석한다. 그는 특정인 지지 발언은 피하고 군정(軍政) 종식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어 ‘선거방해 전술이 자유당 말기 양상을 닮아가고 있다’고 지적하고, ‘지난날 4·19가 일어나고, 5·16이 일어나게 된 근원은 3·15 부정선거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명선거만이 우리나라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 대안과 비전 제시하는 정치인으로 각인되기 시작
대선 막바지에 이르자 북한 공산당(共産黨)과 남한 공화당(共和黨)의 연계 공방이 치열해지면서 화두로 떠오른다. 윤보선 후보가 9일 경북 안동 유세 때 박정희 후보를 겨냥, ‘공화당은 공산당 돈으로 만들어진 정당이니 민주정당이 될 수 없다’고 단정한 것. ‘간첩 황태성이 북한에서 20만 달러를 가져와 김종필에게 넘겨주고 그 돈으로 만들어진 정당이 공화당’이라는 게 윤 후보 주장의 주요 골자였다.
김대중 대변인은 대선을 사흘 앞둔 12일 민정당의 김영삼·자민당의 김용성·자유당의 한갑수·국민의당의 송원영 대변인과 민주당사에서 회합을 갖는다. 이어 지금까지 선거 양상을 상세히 검토한 후 “박정희(朴正熙) 씨는 위헌·위법과 부정선거를 자행하고 생사의 기로에 선 민족을 구할 능력도 포부도 없다”라고 단정하는 한편 박 의장에게 “즉각 정권의 자리에서 물러설 것”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다.
정당 대변인들이 촉구한 공동 성명 첫 번째는 ▲ 원천적인 부정선거 ▲ 권력층들의 위헌·위법 자행 ▲ 여당의 기만적 정책 나열 ▲ 쿠데타를 예비 음모한 윤치영 씨의 광주 발언과 박정희 후보의 묵인 ▲ 진짜 사대주의론 등이었다.
공화당은 지방조직 확대책의 하나로 각 면(面), 동(洞) 단위에 지구당 분회를 설치한다. 그러자 김대중 대변인은 “불법적인 사전조직으로 탄생한 공화당이 불법적인 사후 조직으로 비대해지고 있다”며 “공화당이 불법임을 알면서도 말단 조직에 열중하는 것은 3·15 선거 당시 자유당의 3인조, 9인조 재현을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짙게 한다”라고 비판했다.
제5대 대통령 선거는 진흙탕 싸움 속에서도 예정대로 치러졌다. 결과는 박정희 후보가 15만 6,000여 표차로 신승한다. 이에 DJ는 훗날 “윤 후보가 박 후보를 공산당이라고 몰아붙인 것은 현명하지 못한 전략이었다.”라고 회고하였다. 선거에 부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잇단 군정(軍政) 실패로 나라 꼴은 말이 아니었고, 경제도 극도로 침체하여 정치군인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정서가 널리 퍼져 윤 후보의 실언만 없었다면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DJ는 그해(1963) 11월 26일 치러진 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목포에서 출마, 드디어 원내에 진입한다. 이후 명연설가로 인정받는 등 그의 의정활동은 눈부셨다. 국회도서관을 가장 많이 찾는 의원이 그였으며, 다양한 상임위 활동을 통해 민주사회 건설과 평화통일 정책을 거침없이 설파한 의원도 그였다. 철학과 소신을 갖춘 그는 1964년 4월 헌정사상 최초로 본회의 최장 시간 의사진행발언(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워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하였다.
1967년 5월 DJ는 첫 번째 저서인 <분노의 메아리>(삼성당)를 출간한다. 이 책은 당시 그의 인식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으로 6대 국회의원 시절 국회에서 진행한 연설 내용이 담겨 있다. 그해(1967) 6월 8일 치러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목포에서 출마, 박정희 정권의 집중적인 ‘낙선 전략’을 꿰뚫고 당선된다. 이후 야당의 중심인물로 부각되면서 새로운 대안과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으로 각인되기 시작하였다.
# 윤보선 후보 중앙국민학교에서 유세
제6대 대통령 선거는 1967년 5월 3일 치러졌다. 이해는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 맞붙었던 대통령 박정희와 야당 신민당의 윤보선이 재격돌하였다.
그해(1967) 4월 23일 군산중앙국민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윤보선 신민당 대통령 후보 유세장 모습이다. 호남유세 첫날로 당시 신문은 2만여 청중이 모였다고 전했다. 이날 윤 후보는 “대통령은 어느 지방에서 났든지 그 지방의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되고 전 국민의 대통령이 되어야 하며 어느 지방에 특혜를 주고 어느 지방에 푸대접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윤 후보는 또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벼락부자가 되는 사람이 많은 반면, 절대다수 대중은 이 정부로 말미암아 수탈을 당하고 농사를 짓거나 장사를 하거나 월급쟁이를 해도 살 수 없는 세상”이라고 부연했다. 이어 집권 공약 가운데 비료의 배급제 폐지와 자유 판매제 실시를 강조하고 이중 곡가제실시, 비료 가격 30% 인하, 대중세(大衆稅) 20% 인하 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보도에 따르면 윤 후보는 법(法)을 지키면 못 살고, 법을 많이 어길수록 잘 살며 도둑질하고 협잡을 잘할수록 부자(富者)가 되는 불길한 유산을 자손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 이번 선거를 통해 기어이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박 정권은 음성적이고 지능적인 완전 범죄형의 부정선거를 획책, 선거 쿠데타를 기도하고 있다”라고 신랄히 비난했다.
군산 유세 다음 날(24일) 신민당은 성명을 통해 “공화당이 관권과 금력을 총동원하여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적인 청중 동원으로 공공연한 불법선거운동을 감행하고 있다.”라고 단정, 구체적 증거를 수집하는 대로 곧 사직당국에 고발키로 방침을 세웠다고 밝혔다. 이어 “공화당은 청중 동원뿐 아니라 청중 숫자를 과장 조작하고 심지어는 언론 기관에 압력을 가해 야당 청중 숫자는 줄이고 여당 숫자를 과장 보도토록 악랄한 수법을 자행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