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에 야구·축구·정구 보급ⓐ/전국규모 대회도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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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에 야구·축구·정구 보급ⓐ/전국규모 대회도 열려
  •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 승인 2020.03.06 08:55
  • 기사수정 2022-01-14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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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축구단 소년팀./출처=군산시
평화축구단 소년팀./출처=군산시

 

백열등에 담뱃불 붙이려고 곰방대를 들이댔던 개화기 이 땅의 청년들.

그들의 혼돈은 스포츠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의 마수가 한반도로 손을 뻗치기 시작하던 시기, 서양선교사들을 통해 보급된 스포츠는 삼일만세운동이 일어나는 1919년까지 여명기를 거치는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와 우화를 남기며 청소년들 사이에 급속도로 전파된다.

군산은 호남에서 가장 빠르게 스포츠(야구, 축구, 정구 등)가 보급된 도시로 알려진다.

개항(1899년 5월) 이후 서양 선교사들이 지금의 구암동산에 개설한 선교스테이션(구암병원, 구암교회, 영명중학교, 멜볼딘여학교, 안락소학교, 성경학교, 도서관, 선교사 사택, 직원 숙소 등)에 야구와 축구 경기가 가능한 운동장과 정구장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대한제국은 경술국치(1910) 이후 일본에 종속된다.

그럼에도 청년운동 및 스포츠는 면면히 이어지면서 발전을 거듭한다.

삼일만세운동을 전후해 군산은 기독청년회, 경신구락부, 미우구락부, 동광청년회, 군산청년회, 평화축구단, 금강체육단 등 다양한 단체가 조직된다.

그 중 평화축구단은 군산 최초 체육단체로 알려진다.

선수들은 영명중학교 운동장, 정미소 벼 건조장 등에서 연습하였다.

군산기독청년회는 시대가 요구하는 주제 중심으로 토론회, 강연회, 야학회 등을 열었으며, 독립운동에도 참여하였다.

1922년 10월 창립한 군산청년회는 군산공립보통학교 운동장에서 열린 전국규모 축구대회, 관동 대지진 피해 동포 추모대회, 활사회(活寫會) 조직 등 1920년대 군산 지역 문화 및 체육 발전을 이끈 대표적 민족운동 단체였다.

평화축구단은 1920년 5월 창단된다.

선수는 20여 명, 유니폼도 없는 초라한 팀으로 출발했으나 이듬해(1921) 청년단과 소년단을 각각 창설한다.

청년단은 현경남, 이서구, 김서봉, 안수정 등, 소년단은 채금석, 현부남, 박봉석, 이서구 등으로 구성됐다.

그 해(1921) 9월에는 화강정미소에서 ‘남조선 소년축구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는 전국에서 13개 팀이 참가, 전남 순천팀이 우승하였다.

채금석이 이끄는 소년단 팀은 1923년 4월 이리(익산)에서 개최된 전라북도 부군대항(府郡對抗) 소년축구대회에서 우승기를 거머쥐는 쾌거를 이룬다.

열정과 기량을 겸비한 선수들은 크고 작은 지방 대회에 참가, 빼어난 실력을 보여주면서 전조선축구대회에 3년 연속(1922년, 1923년, 1924년) 출전하는 기염을 토한다.

1925년 11월 희소관에서 활동사진 및 예기(藝妓) 연주회가 이틀(25~26일) 동안 열렸다.

행사 목적은 평화축구단 회관 건축기금 조성. 보성권번과 군산권번이 후원했으며, 양 권번 소속 기생들이 총출연해서 열연을 펼쳤다.

매일 밤 입추의 여지없이 대성황을 이뤘고 많은 의연금이 들어왔다.

다양한 계층으로부터 사랑받았던 평화축구단은 1930년에 출범하는 군산체육회 모체가 되기도 하였다.

(다음은 ‘정구’ 이야기 이어집니다.)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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