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배 대회에서 ‘역전의 명수’ 명성 재현
군산상고 야구팀은 수비에 들어가기 전 특이한 의식을 가졌다.
주심이 플레이볼을 선언하고 1회 수비 때 선수들은 자기 위치에서 허리를 잔뜩 수그리고 그라운드를 향해 양손을 무릎 위에 얹는다.
꼼짝 않고 몇 초가 지나면 허리를 치켜든 투수가 큰소리로 ‘가자!’ 하고 외친다.
이때 선수들은 허리를 펴면서 ‘파이팅!’으로 답하며 힘을 모았다. 그러한 의식은 2회 때는 포수, 3회 때는 1루수··· 이렇게 9회까지 이어지며 상대 팀을 제압하는 기를 불어넣었다.
조규제·이성일 배터리가 이끄는 군산상고 야구부(감독 최한익)는 1986년 4월 27일 오후 또 다시 역전의 신화를 엮어내며 고교야구 정상의 상징인 대통령배를 차지한다.
제20회 대통령배 결승전이 열리는 서울운동장 야구장. 경기 중반까지는 타격에서 우세한 경남고의 페이스.
군산상은 3회 말 경남고에 1득점을 허용한 뒤 4회 초 무사 1, 2루 찬스를 주자플레이 미스로 놓친 후 8회까지 3안타의 빈공을 보이며 끌려간다.
8회 말 위기를 넘기고 사기가 오른 군산상은 9회 초 선두타자 이성일의 우중간을 뚫는 통렬한 2루타와 4번 박진석의 중견수 키를 넘기는 연이은 2루타로 1-1 타이를 만들고 연장에 돌입한다.
10회를 무사히 넘긴 군산상은 11회 초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한다.
2번 권순구가 경남고 에이스 김병주를 공략, 우익수 글러브 밑을 빠져 펜스까지 굴러가는 천금 같은 3루타를 터뜨린 것.
이어 타석에 들어선 3번 타자 이성일이 좌익수 깊숙한 희생플라이를 날려 3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들임으로써 2만여 관중을 환희와 통탄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고 2시간 54분간에 걸친 대접전을 마무리 짓는다.
군산상고는 1976년(10회), 1981년(15회), 대회에 이어 세 번째 패권을 안았고, 5년 주기로 대통령배를 차지하는 진기록도 작성한다.
한편 최우수선수상은 역전의 명수 명성을 재현한 군산상고 중견수 권순구, 우수투수상은 조규제 선수에게 각각 돌아갔고, 희생플라이로 승리타점을 올린 이성일 선수는 수훈상을 받았다.
아래는 이성일 의원의 추억담.
“당일은 정신없이 보냈고, 이튿날 중앙일보 본사, 삼성전자 등을 방문해서 선물을 받고서야 우승을 실감했습니다."
"점심은 신라호텔에서 뷔페를 먹었는데요. 이름도 모르는 갖가지 음식을 그릇(쟁반)에 가득 담아 5~6회 비우는 친구도 있었죠."
"기껏해야 삼겹살만 먹던 촌놈 입에 쇠고기 스테이크가 들어가니까 아이스크림처럼 살살 녹더라고요. 그때 쇠고기는 원도 한도 없이 먹어봤습니다. (웃음)”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던 군산 시내
군산상고가 제20회 대통령배 결승에서 경남고를 누르고 패권을 차지하자 군산 시내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다.
경기가 진행되는 3시간 가까이 시가지는 상가가 모두 철시한 것처럼 한산했다. 택시 기사들은 아예 운행을 중단, 택시를 도로변에 세워둔 채 라디오 중계방송에 귀를 기울였으며, 다방들은 TV 중계를 보려고 몰려든 손님으로 만원을 이뤘다.
각 가정에서도 가족들과 함께 TV를 지켜보며 군산상고 선수들을 응원했다.
선수들이 안타를 칠 때마다 환호성을 터뜨렸고, 어이없는 실수로 득점 기회를 놓칠 때는 탄성을 지르며 아쉬워했다. 시민들은 군산상고가 역전의 명수답게 끈질긴 저력을 발휘, 역전승을 거두자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기뻐하였다.
'群山商 또 역전 우승... 연장 11회 慶南 울려'
'군산상 역전 우승...희생플라이로 결승점'
'群山 축제분위기··· 逆轉勝에 일제히 환호'
'군산상고 우승하던 날, 시민들 짝지어 자축파티 열어'
'상가 문 닫고, 다방마다 ‘TV 관전 만원’,'기사들, 택시 세우고 라디오에 귀 기울이기도'
이상은 당시 군산상고 우승과 군산 시내 분위기를 전하는 중앙지와 지방지 신문 기사 제목들이다.
다음은 이성일 의원의 회고.
“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아침 대기하고 있던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왔는데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도 환영 현수막을 본 승객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더군요."
"전주와 익산 시민은 물론 논에서 일하던 농부들도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들면서 환영해주셨습니다."
"구 군산역을 지나 중앙로에 들어서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영 현수막이 걸렸는데, 형언하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죠.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해집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