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현 초대 감독은 1969년 여름 도저히 못 하겠다며 전주 출신 서창활을 2대 감독으로 추천하고, 감독직을 내려놓는다.
두 감독은 2년 동안 토대를 닦으면서 열과 성을 다했다.
선수들 기량도 향상됐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이용일은 선수들이 지방 출신 감독을 신뢰하지 못하는 기미를 보이자 새로운 지도자를 스카우트하기로 마음을 정한다.
“1970년 봄쯤 됐을 거야. 그때는 실업야구가 열서너 개 있었는데, 감독들이 나에게 신세를 졌거나 친한 사람들이어서 서울로 올라가 유망한 코치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지."
"며칠 지났는데 대한야구협회 전무 김정환이 전화를 해왔어. ‘야! 기업은행 최관수가 은퇴한단다, 마산상고에서 데려갈 모양인데 어떻게 할 거냐?’라고 묻더군."
"인천 동산고 시절 유일하게 국가대표로 발탁되어 김응용, 백인천 등과 어깨를 나란히 했고, 이영민 타격상도 받은 야구 천재여서 '좋다, 잡아라!'라고 했지."
"이튿날 서울로 올라가 최관수를 만났어. 군산이 지방 도시여서 응낙할지 은근히 걱정됐는데 본점에서 허락만 하면 내려오겠다고 하더군."
"그 길로 서울대 상대 선배 정우창 행장을 찾아가 '군산에서 고무신 장사(경성고무) 하면서 학생 야구를 키우고 있는데, 유능한 지도자가 필요하니 최관수를 보내달라'고 간청했지."
"정 선배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더니 그해 7월 발령을 내더라고."
"직책은 기업은행 군산지점 행원이니 월급은 은행에서 받고, 출근은 군산상고 운동장으로 하게 됐지. (웃음)”
"최관수 감독은 통솔력이 뛰어난 진정한 지도자"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최관수 감독 부임을 며칠 앞둔 7월 18일 경성고무(주)에 대형화재가 발생, 공장이 잿더미가 된다.
군산 시민과 관내 초중고 학생들은 경성고무 돕기에 나섰고, 각계에서 의연금이 들어온다.
화재보험도 받게 돼 빠른 복구가 가능했다.
그해(1970) 8월 6일 치 <동아일보>는 “일제 때부터 ‘만월(滿月)’, ‘삼천리’ 등의 상표로 일본 업자와 경쟁해온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무제품 메이커 경성고무는 군산공장이 잿더미로 쓰러진 후 재기(再起)하지 못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각계(各界)에서 의연금이 들어오고 화재보험을 받게 되어 곧 복구 작업에 들어가게 됐다.”라고 전한다.
이어 신문은 “경성고무가 설립한 ‘수광(壽光) 장학회’와 군산(群山)의 8개 중고(中高) 및 국민학교(초등학교) 학생들이 군산 공장의 복구를 위해 의연금을 각출하고 있고, 대한화재(大韓火災)로부터 1억4천만 원의 보험금을 타게 되어 군상공장 복구가 예상보다 이른 시일 안에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라고 부연한다.
그럼에도 이용일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에 빠질 거라는 소문이 야구인들 사이에 나돌았다. 최관수 감독에게 다시 생각해보라며 만류하는 야구인도 있었다.
그러나 최관수는 형편이 어려워졌다고 약속을 어길 수 없다며 7월 23일 군산상고 감독으로 부임한다.
“신의를 지키는 최 감독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환영 파티를 열어주고 한국합판, 백화양조, 호남제분 등 크고 작은 기업체와 지인들을 찾아다니며 협조를 부탁했지."
"최관수 행원이 권유하는 형식으로 예금을 올려달라고 말이야. 반응이 예상외로 좋아서 힘이 나더군. 예금권유 실적 전국 1위 행원으로 본점에서 표창을 몇 차례 받으니까 평소 과묵했던 관수도 신이 난거지."
"그뿐 아니야. 운동장에 나가보면 선수들 눈빛부터 달라. 몸놀림도 바뀌고 말이야."
"그런데 하루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어. 추석날 선수들이 시내에서 술을 마시고 패싸움을 벌였다는 거야. 경찰도 다녀가고, 사태가 심각해지자 최 감독이 모든 일은 감독에게 맡겨달라고 간청한 뒤 이튿날 선수들을 교실로 불러 야구 배트를 하나씩 주면서 '모두 내 잘못이니 내가 벌을 받겠다'면서 엎드렸다는 거야."
"누가 감히 스승에게 매질할 수 있겠어.
"그러자 '너희가 때리지 않으면 나는 이곳을 떠나겠다'고 호통치니까 선수들이 펑펑 울면서 때렸고, 교실이 울음바다가 됐다는 거야···.”
이용일은 “최관수 감독은 치밀하고 통솔력이 뛰어난 진정한 지도자였다. (최)관수가 있었기에 군산상고가 야구 명문이 됐고, 역전의 명수가 됐다”라며 옛일들을 떠올렸다. 그랬다. 비가 온 뒤 땅이 굳는다고 했듯, 그 사건 후 사제지간 정은 더욱 깊어지고, 선수들은 정상을 향해 하나로 똘똘 뭉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