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안 記者의 '군산 야구 100년사'] 군산 최초 야구인 '양기준'…그는 누구?

2020-03-13     조종안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양기준 선생 부부/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우리나라 야구(野球)는 1904년 황성기독청년회(YMCA) 초대 총무 질레트 선교사가 회원들에게 경기방식을 가르친 것이 효시로 기록된다.

군산에 야구가 처음 소개된 시기는 경술국치(1910)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야구 종주국인 미국 선교사들이 호남에서 최초로 선교를 시작한 지역이라는 점과 야구부가 존재했던 영명학교 설립 시기(1902), 졸업생 회고록, <전북 체육 1백년사> 기록 등이 추정을 가능케 한다.

<전북 체육 1백년사>에 따르면 야구는 축구와 비슷한 시기 전북 지역에 들어온다.

경술국치 전후 일본인들이 군산을 중심으로 몰려오면서 야구의 물결이 일기 시작, 전주에까지 보급된다.

1910년 처음으로 야구 경기가 열렸으며, 당시엔 일인들이 들어오면서 생겨났다 하여 ‘왜놈 운동’이라 불렸다.

군산 최초 야구인은 양기준(梁基俊: 1896~1975)으로 기록에 나타난다.

옥구군 개정면 구암리(현 군산시 구암동)에서 태어난 그는 1902년 전킨(Junkin) 선교사가 설립한 영명중학교 야구부에서 선두 타자로 활약하였다.

일찍이 서양선교사들을 사귀게 된 할아버지(양응칠)께서는 자녀들을 신교육 시키기에 앞장서셔서 선교사들이 세운 영명중학교에 아버지(양기준)를 입학시키셨으며, 영명중학교는 선교사들에 의한 교육으로 선진 문물을 학생들에게 주입시키기 시작하였다.

야구, 밴드, 스케이트 등은 그때 벌써 받아들여 선각자 역할을 하였으며 3·1운동에 앞장섰던 학교가 바로 영명중학교였다.”

-양재강 원장 부친 자서전에서

농촌에서 순회 진료 펼치는 양기준 선생./사진 출처=군산야구 100년사

 

서울에서 치과의원을 운영하는 양재강(양기준씨 손자) 원장은 “자서전 형식으로 정리한 부친의 원고를 읽다가 1896년(고종 33) 10월 21일 지금의 군산시 구암동에서 양응칠(구암교회 초대 장로) 장남으로 태어난 할아버지(양기준)가 영명학교 재학시절 야구를 했다는 기록을 발견했다”라고 전했다.

양 원장은 “할아버지가 학창 시절에 사용하던 야구 배트가 남아있었으나 이사 다니면서 잃어버렸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양기준은 구암유치원 설립자이기도 하다.

그는 평소 운동을 잘하였고, 음악(가야금, 만돌린, 풍금 등)을 좋아했으며, 야구는 항상 선두(1번 타자)에서 활약하였다.

이 같은 서록은 전라북도 야구는 군산에서 물결이 일기 시작하였고, 1910년 군산에서 야구 경기가 처음 열렸다는 <전북 체육 1백년사> 기록을 뒷받침한다.

 

한지의사 면허 취득, 오지에서 인술 펼쳐

군산 선교스테이션은 오긍선이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는 1907년 가을 이후 큰 변화가 일어난다.

군산 시내에 지원(군산진료소)을 개원하고, 영명중학교에 고등과와 특별과를 병설하여 상급반 학생들에게 위생학, 생리학, 해부학, 화학·약물학 등의 기초 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

영명중학교 졸업 후 구암병원에 근무하던 양기준은 삼일만세운동(3·5만세운동)에 앞장서 참여했다가 일경에 체포된다.

그리고 그해(1919) 3월 31일 광주지방법원 군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유죄판결을 받고, 4월 30일 대구 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을 선고 받는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했으나 6월 12일 고등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6개월 옥고를 치른다.

당시 나이는 스물넷.

대구 감옥에서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양기준은 세브란스의전 출신 김병수가 이리(익산)에 개원한 삼산의원에서 조수(助手)로 근무한다.

이후 구암병원과 삼산의원 경력을 바탕으로 1932년 한지의사(限地醫師) 시험에 합격, 의사면허를 취득한다.

양기준은 무의촌 산간지역 공의(公醫)로 재직하면서 전염병 예방에 힘쓴다.

경북 고령을 비롯해 함경도 고원(산곡), 단천, 북청 평안도 광량만, 맹산 등 주로 북한 지역 오지에서 인술을 펼친다.

광복 후 죽을 고비를 몇 차례 넘기면서 월남한다,

이후 생을 마감하는 1975년까지 전북 이리시 보건소장, 경기도 강화군, 연평도 진료보건소장 등을 지냈다. (계속)

 

 

 

조종안 기자는?

조종안 기자는 늘 발품을 판다.

현장 곳곳을 누비며 쓰는 그의 기사는 그래서 맛깔난다.

관념적으로 표현하면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취재거리와 호흡하며 소통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그의 취재 열정과 집념을 고스란히 담아낸 것은 자신의 이름이 또렷하게 인쇄된 여러 권의 책이다.

이번에 '투데이 군산'에 새롭게 내용을 보완해 연재하는 <군산야구 100년사(2014)>를 비롯해 <군산항에 얽힌 이야기들(공저/2017)> <군산 해어화 100년(2018)> <금강, 그 물길 따라 100년(2018)>이 대표적이다.

그를 대변해주는 논문도 꽤 있다.

2013년에 군산대 인문과학연구소 주최 학술대회에서 주제발표한 [기록으로 보는 이영춘 박사-그가 겪은 고난 10가지]등은 많은 이들로부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라도 권번 문화예술에 대한 가치제고(2018)>라는 주제발표도 대표적인 그의 열정과 집념의 산물이다.

그는 2005년 인터넷신문 <플러스코리아>에서 처음 언론계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인터넷신문 <신문고 뉴스> 논설위원 및 편집위원을 지냈다.

지금은 인터넷신문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 중이다.

한국전쟁 발발 때 세상의 빛을 봤다는 그가 올해로 일흔의 나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는다.

취재 현장 곳곳에서 만나본 그는 여전히 젊다.

/ '투데이 군산' 뉴스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