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중 백미… 중국 고서(古書) 사기에 소개된 요리
시중 족발집에서 보통 보쌈과 함께 취급하는 경우가 일반적
오늘날 동물애호가들의 질타를 받고 있는 우리의 전통 보양식(?)은 선호와 관계없이 선택을 받는데 많은 어려움을 받고 있지만 족발과 보쌈은 고대에서 지금까지 변함없는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족발요리에 관한한 동서양이 따로 없는 것 같다. 선호도까지 흡사한 흐름이다.
동양의 경우 중국의 고역사서인 사마천 사기에 나올 정도면 그 역사는 수 천 년은 족히 될 것이다.
서양의 경우 우리의 족발과 유사하게 만든 독일의 슈바인스학세나 프랑스의 돼지 족발 조림인 오 피에 드 코숑(루이 16세가 프랑스 대혁명기에 국외 탈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조차 맛보려 했던 프랑스 전통요리) 등에서 볼 때 그렇지 않을까.
우리전통 음식으로도 인기를 누렸던 것은 분명하다.
족발과 보쌈은 다르면서도 거의 함께 다루는 음식점들이 많은 것 같다. 군산의 경우 족발집과 보쌈집들은 대부분 이들 음식들을 함께 취급하는 게 일반적.
물론 지역에 따라 요리법은 다소 차이는 있지만 족발의 한 장을 이룬 것은 서울 장충동과 공덕동 골목에서 비롯됐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정설이 아닐까.
군산의 족발은 서울의 유명골목 족발과 어떤 관련이 있고 그 맛을 전수받기는 한 걸까.
# 족발(문화어: 발족찜)… 군산족발의 대표주자 ‘장터왕족발’
족발은 간장과 향신료를 곁들인 돼지 발 부분을 익혀서 기름을 빼고 조린 우리의 요리이다.
보통 편을 내어 편육으로 먹는다. 돼지는 앞발이 뒷발보다 더 크므로 앞발은 대자로 팔고 뒷발은 소자로 판매한다.
간장, 마늘, 생강, 대파, 양파, 설탕, 후추, 소주 등 다양한 재료들을 넣는데, 그 외에 넣는 독특한 재료들과 조리 순서에 따라서 냄새도 덜 나고 더 맛깔 나는 족발을 만들 수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새우젓을 곁들여 먹기도 한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의하면, 함경도 실향민들이 족발의 영양가가 풍부하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족발거리가 형성된 곳이 있는데, 장충동의 족발거리와 공덕동 공덕시장의 족발골목이 유명하다.
또한 어린 돼지의 족을 썰지 않고 통으로 '미니족'이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기도 한다.
수십 년 전부터 지금의 서울 장충동 족발거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한 건물이 있었는데 그곳에 두 개의 족발집이 문을 열면서 장충동 족발집의 역사는 시작됐다.
그 집 아주머니의 고향은 평안북도 곽산,
그러니까 평안북도에서 먹었던 족발 요리가 장충동에 터를 잡게 됐다.
그 아주머니의 어머니가 겨울이면 돼지를 통째로 잡아 걸어 놓고 고기요리를 해줬는데 그 중 꼬들꼬들하게 마른 족발 요리의 맛이 아주머니의 입맛과 마음에 남아있었다.
이렇게 시작된 장충동 족발은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명성을 누려 덩달아 지금의 족발거리에 식당들이 하나둘씩 생기기 시작했다. 이렇게 만들어지기 시작한 게 장충동 족발거리다.
지금도 큰길과 좁은 골목에 십여 집이 옹기종기 모여 옛 맛을 지켜가고 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사람들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으며 수십 년 동안 족발거리의 명성을 지켜온 것은 푸짐하고 맛 좋은 족발의 맛 때문일 것이다.
족발은 기호가 분명하게 엇갈리는 음식이다.
발톱까지 달린 생김새가 징그럽다고 꺼리며 먹지 않는 사람도 있는 반면 다른 고기와 달리 족발만의 특별한 식감과 풍미 때문에 사족을 못 쓰는 사람도 많다.
특히 돼지 족발은 쫄깃쫄깃하고 기름진 맛이 일품인데 사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세계적으로도 널리 사랑받는 음식이다.
어찌나 족발을 사랑하는지 단순히 맛을 즐겼을 뿐만 아니라 약으로도 먹었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소원 음식으로도 먹었다.
우리는 술안주를 겸해 출출할 때 간식으로 즐겨 먹은 한편으로 아이를 낳은 산모가 젖이 잘 나오지 않을 때면 족발을 먹였을 정도로 몸에 좋다고 여겼다.
서양 사람들도 돼지 족발을 좋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독일에는 껍질을 바삭하게 구운 돼지 족발 학세와 맥주에 푹 삶아 부드러운 아이스바인이 있다.
프랑스 사람은 달콤한 돼지 족발 조림인 오 피에 드 코숑을 즐겨 먹으며, 이탈리아 사람들은 새해 첫날 돼지 족발인 참포테를 먹는다한다.
사람들이 족발을 좋아하는 이유는 맛도 특별하지만 족발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과거 우리 군산의 원도심권 전성기는 일제강점기부터 최소한 옛 시청사가 있었던 약 100년간이었을 것이다.
월명동과 영화동 등 원도심권의 별의별 음식점들이 그 시절의 미식가들과 관가사람들의 입맛 붙잡기 경쟁을 벌였을 것은 분명하다.
군산도 서울 등지의 원조격인 족발집 탄생과 같은 흐름은 같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그 시대의 유행과 상당한 궤를 같이 했을 것은 분명하다.
이곳은 세월이 흐르며 단골도 시청주변 관가사람들에서 젊은이들과 주변 직장인들로 늘어갔다.
이 골목 손님들은 나이든 분도 있지만 부모와 함께 이곳의 맛을 봤던 자녀들이 주류를 이뤘다.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이곳을 찾는 이들은 적지 않다. 전주의 추천대교 인근의 팔복동 족발집들도 도내 대표적인 족발단지다.
군산의 족발거리는 서울과 전주처럼 존재하지 않았지만 족발이란 타이틀로 30년을 훌쩍 넘긴 곳이 있다. 족발에 관한한 군산족발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토박이들은 열에 아홉은 영화동의 장터왕족발을 꼽을 것이다.
그 공부상 개업시기가 1989년 3월.
실제로는 공부상과 달리 85년에 문을 열었다는 게 여사장 백후남(70) 여사의 얘기다.
남편이 건강문제로 생업에 지장을 받자 여러 음식들을 만드는 것을 고민했단다.
그 때 하숙을 하고 있던 한 고위공직자의 조언을 듣고 고민하던 끝에 족발을 택했다는 것.
그 당시 모델로 삼았던 것이 옛 동서병원 인근에서 영업했던 서울이사 왔던 것으로 알려진 천호동 족발집의 음식 맛을 보고 벤치마킹, 오늘에 이르렀다.
모델로 삼았던 음식점은 오래 전에 폐업했고 족발만 전문으로 다룬 덕에 공중파TV 등으로부터 섭외를 자주 받고 있다는 후문.
아들이 가업을 이어받은 지만도 13년째에 이르고 백 사장은 여전히 총감독 겸 엄격한 스승과 같은 역할로 군산미식가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
수년 전, 공중파의 한 프로그램 ‘문전성시의 비밀’에서는 왕족발+감자탕 맛집, ‘장터왕족발’이 소개된바 있다.
이곳은 푸짐한 왕족발을 시키면 감자탕이 덤으로 제공돼 문전성시를 이룬다는 대박 맛집.
약 30년 째 이어온 접장에 국내산 족발을 삶는데 정향, 감초 등 18가지 한약재까지 듬뿍 들어간다.
게다가 함께 제공되는 양파김치, 무말랭이, 배추김치는 족발과 환상의 궁합을 자랑한다고 한다.
또 이곳의 감자탕은 돼지 무릎 뼈를 5시간 우려내 진한 육수를 만들어낸다.
거기에 콩물을 넣는 것이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국물 맛의 비법이라고 한다.
원조격인 이 요리집에 맞서 으뜸족발(1993년 4월), 왕고래 왕족발 보쌈(1994년 6월), 쟁족(2002년 10월), 황제족발(2009년 2월) 등도 성업 중이다.
물론 요즘은 퓨전식이나 프랜차이즈로 영업하고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편 보쌈은 돼지고기나 기타 고기를 삶은 수육과 양념 속을 소금에 절인 배춧잎 또는 겉절이에 싸먹는 음식. 김치와 맛의 궁합이 환상적인지라 김장을 하고 나면 곧잘 같이 먹게 되는 음식이다.
보통 족발과 보쌈은 한 묶음으로 해서 야식의 꽃으로 보는 사람들도 많다보니, 시중의 보쌈가게에서는 족발을 같이 취급한다.
주객이 전도된 사례.
원래 ‘보쌈’ 이라고 하는 것은 절인 배추로 속을 감싸서 만드는 김치의 종류를 말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수육과 함께 먹으면서 수육을 보쌈이라 부르게 되었고 진짜 보쌈인 김치는 보쌈김치라는 이름을 떠안게 되었다.
즉, 고기는 메인이 아니기 때문에 보쌈에 같이 내는 삶은 고기(수육)는 돼지 어느 부위라도 상관이 없다.
주로 어깨, 다리(전지, 후지), 목살 등을 쓰며 삼겹살을 내는 집도 여럿 있다.